수필가 김창종의 현대시 감상(28)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그러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감상=해설
1913년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노천명 시인은 이화여전을 졸업한 여류시인이다. 재학시절부터 시작(詩作)에 정진하여 많은 수작을 남겼으며 졸업 후에는 신문기자로 활약하였다. 『산호림』이란 시집을 남겼다.
『시원(詩苑)』 동인으로 문단에 나온 노 시인은 소녀다운 감성적인 시에서 종교적 참회의 시를 썼다.
『창변(窓邊)』 『사슴의 노래』도 사랑받는 님의 시집이다. 수필집 『생활의 백서』 『산딸기』 등도 있다.
1957년 세상을 떠나기 까지 소년·소녀들의 가장 많은 팬을 가진 청초하고도 사슴같은 시인이었다.
목이 길고 큰 체구이면서도 높은 나무의 나뭇잎을 따서 먹는데만 큰 몸집을 이용하고 늘 순진무구하고 조용한 모습의 사슴을 슬픈 짐승으로 미화한 님의 마음 또한 착하고 순수했음이리라.
임금의 왕관을 쓰고 먼길을 여행하는 선한 짐승들의 여행을 상상하며 그 무리의 착하고 점잖은 사슴을 동참시킨 시심 또한 아름답다.
사슴의 향수가 곧 님의 향수이며 먼 전설을 되새기는 사슴 또한 님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