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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53] 박광철 전 나사렛대 교수를 만나다

재경포천시민회 모태 ‘향심회’ 초대회장 박광철 교수, 포천장학회, 향심회 등 창안·창설의 중심 역할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박광철 전 나사렛대 교수.

‘고목에도 꽃은 핀다’
생물학적으로 고목에는 꽃이 필수 없다. 그러나 은유적인 표현을 빌어 박광철 교수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나타내고자 한다. 그는 젊은 시절 고향 포천에서 계몽운동을 펼치고 27년간 환경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학문 연구를 하다 지난 2000년 2월 정년 퇴임을 했다.
현재 (사)한국어린이육영회 사무처장으로 재직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주일마다 교회 셔틀버스를 직접 몰기도 한다.
고목에도 꽃이 피듯 박광철 교수는 노년에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리더십과 추진력이 있었던 박광철 교수. 초등학교 4학년때 독립운동에 가담했을 정도로 그의 기지는 남달랐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초등학생으로서 북한의 소년단이라는 조직에 맞서는 비소년단을 조직하기도 했고 가산초교 교사로 재직시 축구부를 창설하기도 했다.
또한 고교시절 학도호국단 간부,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등을 역임하며 젊은 날의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었다.
그는 1980년대 야당인 민권당으로 포천지역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긴 했지만 그 당시 포천에서는 박 교수를 불의에 맞서는 용기있는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많은 단체를 창안ㆍ창설하는데 앞장서온 박광철 교수를 만나보았다.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던 당시 영화상영하던 장면.
▲박광철 교수가 걸어온 길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서 태어난 박광철 교수의 어린시절은 시대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광복이 되고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져 그의 가족이 거주하던 영중면 영송리는 북에, 서울로 유학을 떠나있던 형제들은 남에 귀속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박 교수의 부친은 서울로 유학간 자녀들을 위해 남쪽 행을 결정하고 두 번의 월남 시도 끝에 그 당시 군청소재지였던 포천읍에 거주하게 됐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박 교수는 상급학교 진학 시험을 3개월 앞두고 포천초교(34회)로 전학하게 돼 전 학교와 교과 내용의 차이가 있어 진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박 교수는 포천초교 졸업 후 서울 농업중학교에 입학해 대학 진학을 염두하고 착실히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던 1950년 6.25가 발발했다. 그 날은 오랜만에 고향집에서 단잠을 이루고 있던 날이었다고 박 교수는 회상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박 교수의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큰 형은 월북을 하게 되고 둘째 형과 넷째 형은 의용군에 강제 징집되었고 셋째 형은 국군 장교가 되었다. 졸지에 남겨진 가족을 돌봐야하는 처지가 된 박 교수는 피난을 갔다가 국군이 38선 이남을 수복하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때 의용소방대에서 치안 유지와 공비토벌에 참여하기도 하고 부친의 주선으로 가산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는 가산초교에서 8개월 가량 교사생활을 하면서 축구부를 창설하고 가을 운동회를 총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학교에 복학해 서울시립대에 진학하게 됐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보람있는 대학생활을 했다.
그 당시 낙후된 포천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고향 발전을 위해 젊은 혈기에 시작한 일로 그 후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학생들을 데리고 계몽운동을 계속 펼쳤다.
서울시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남다른 고향사랑으로 박 교수는 재경포천시민회의 모태인 향심회를 조직해 초대회장이 됐다. 또한 강창성 의원과 함께 포천장학회를 설립했다.
그는 1980년대 정치에 꿈을 갖고 17년간 몸 담아왔던 교수직을 벗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민권당 후보로 출마해 뜻을 펴지 못하고 낙선하고 만다.
박광철 교수는 “나의 낙선은 권력을 희구하기보다는 진실과 겸손과 섬김을 앞세우는 그리스도의 편에서 생활하는 것이 현명한 사회생활이 된다는 확신을 갖는 기회가 되었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정치에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선 것을 잘한 일이라고 자평하는 박 교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정치에 뜻을 펴지 못한 그는 그리스도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장로회를 창립하고 학교법인나사렛학원 이사, 한국장로회 총연합회장, 한국교회 평신도단체협의회장, 한국웨슬레 평신도 회장,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평신도회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기독교가 올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는 10여년간 학교법인나사렛학원 이사로 봉사하면서 300명에 불과하던 학교에 재활학과, 영문학과 등을 증설해 대학 규모를 확장하고 사회교육원을 신설하는 등 앞서가는 운영과 새로운 비전으로 교육을 시작해 나사렛대학이 거대 교육원으로 발전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1995년에는 나사렛대학교 환경학과 교수로 임명되어 사회교육원장, 대회협력실장, 재활복지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사)한국어린이육영회(장애인학교) 사무국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박 교수는 주일마다 손수 교회 셔틀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이제는 생활자체가 봉사하는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는 의미에서 틈틈이 자서전을 쓰고 있다.
‘고목에도 꽃은 핀다’라는 제목으로 집필 중인 그의 자서전의 한 토막을 옮겨보았다.
『나는 오늘이 있기까지 나의 삶을 통해 터득하고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주위에 많은 사람들로 둘러 쌓여 있지만 참 이웃은 없고, 달콤한 사랑의 표현은 많아도 섬기려는 사랑은 없으며, 마음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말은 많아도 선행을 위한 진정한 대화는 끊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정신적인 전환점의 발견이다. 그 전환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신앙적 삶을 통해 이웃을 섬기며 살아갈 때 발견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전환점에 이르면 정의가 불의를, 선이 악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회를 형성할 수 있어 겸손한 자 앞에 교만하고 경솔한 자가 굴복하는 모습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이 같은 체험을 통해 나는 태양이 존재하는 한 희망의 빛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집착할 수 있었고 아울러 우리 눈에 보잘 것 없고 쓸모 없이 보여지는 고목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다는 확신 속에 그간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본 기독교 모임인 시모다 클럽 방문했을 당시 모습.


▲앞으로의 계획
=현재 기독교의 장로인 나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추구한다. 이제와서 명예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고자 한다.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포천의 토질을 과학적으로 검사해서 버섯재배라든지 특산물을 개발하는 등 농업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또한 포천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관광사업을 육성하길 바란다.


▲포천신문에 당부 말씀
=영농인들에게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내가 사는 고장이 어떻게 하면 진일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발전지향점을 제시해야 한다.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사화해 포천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길 기대한다.


도움주신 분 김창종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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