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 기상청 근무… 대통령 홍조근정훈장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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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용 전 광주지방기상청장. |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20대 청년이 우연히 기상대와 인연을 맺게 돼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기상행정관에 올랐다. 군내면 출신의 양원용 전 광주지방기상청장이 바로 그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통보관으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일기예보와 같은 시스템을 정립하는데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지진 분석’이라는 논문을 공동 발표하면서 지진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지진을 연구할 수 있는 물꼬를 터 놓았다. 36년간 기상청에서 근무하며 우리나라 기상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양원용 전 청장을 만나보았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가장 크게 영향 받는 것이 기상이다. 특히 농경사회를 이뤘던 우리나라는 기상 변화에 상당히 민감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던 우리나라에서 1960년 국립기상요원양성소 국비장학생을 모집하면서 전문기상인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 때 우연히 신문에서 모집 광고를 보고 기상대와 인연을 맺은 양원용 전 광주지방기상청장. 현재 우리나라 기상 예보적중률은 미국, 영국, 일본 등 기상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과 비슷한 85%를 자랑한다. 젊음을 기상대에서 바친 양 전 청장을 비롯한 많은 기상분야 원로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 전 광주지방기상청장이 걸어온 길 1934년 군내면 구읍리에서 태어난 양원용 전 청장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청성초등학교(10회)와 포천중학교(1회)를 졸업한 후 교사가 턱없이 모자랐던 시절 그는 임시교사 검정고시에 합격해 송우초등학교에서 임시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다 포천고등학교(1회)에 진학해 교사의 꿈을 꾸며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는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군에 입대하게 됐다. 제대 후 우연히 신문에 실린 국립기상요원양성소 국비장학생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그것이 양 전 청장 인생의 최대 전환점이었다. 국립중앙관상대에 입사해서도 그는 꾸준히 공부하며 실력을 쌓아 남들보다 승진이 빨랐다. 그러나 워낙 박봉이라 이직하려는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 중앙부처의 국장급까지는 해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는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소위 말하는 든든한 빽이 없어 그에게는 실력을 키우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입사 후 4년 만에 기좌(사무관급)로 승진했고 그 후 예보관, 기후조사과장, 관측과장, 자료조사과장, 농업기상과장 등 기상대 주요직을 두루 거치며 모든 과정을 섭렵했다. 그는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통보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당시는 TV나 라디오 등 언론매체에서 기상예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있던 때였다. 그가 기상통보관이라는 직을 처음 맡으면서 지금의 일기예보 시스템에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그 때는 양 전 청장이 손수 일기도를 제작하고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지진에 대한 지식이나 대비가 없던 1978년, 홍성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온 나라가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그 당시 관측과장이었던 양 전 청장은 지진에 대한 상황분석부터 대비책까지 마련하라는 책임을 떠맡았다. 그래서 그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지진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미국 시카고대학의 이영복 교수와 ‘한국의 지진 분석’이라는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양 전 청장은 일어와 영어에도 능통해 어업기상통보지침(일어), 국제기상기구규정(영어)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또한 1970년 일본홍수예보세미나 연수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198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기상기구 수문기상전문회의에 정부수석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92년까지 강릉지방기상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겨울철이면 그 곳이 전국에서 가장 바빴다고 할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강원산간 지방이라 자주 폭설이 쏟아지고 동해바다에서는 4~5m의 높은 파도가 수시로 일어 기상대 직원들을 긴장시켰다. 기상이변 외에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에 대한 언론, 주민들의 문의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동해안 일대에는 어업을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일기예보에 상당히 민감했다. 그래서 폭풍경보, 폭풍주의보를 발령하기 전에는 항상 어민들의 생계를 걱정하기도 했다는 양 전 청장이다. 그는 93년에 기상청 예보국 관측관을 거쳐 2년간 광주지방기상청장에 재임한 뒤 지난 95년에 정년 퇴임을 했다. 36년간 기상청에 근무하면서 그가 이루어 놓은 공로가 인정돼 퇴임하면서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2선으로 물러나 98년부터 기상청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 전 청장은 고향이 그리워 2002년부터 고향 군내면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기 마련이라고 한다. 양 전 청장도 예외가 아니다. 고향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는 양 전 청장의 얼굴에는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가득하다.
▲포천 기상의 특이점 =포천은 분지로써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아늑하기도 하지만 철원 추위에 견줄 만큼 날씨가 쌀쌀하기도 하다.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축석고개를 넘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포천의 모습은 그리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쪽을 푸른동산으로 가꿔 놓는 다면 포천의 첫 이미지가 얼마나 좋겠는가?
▲포천신문에 당부 한마디 =신문 발행 초기보다는 내용면에서 많이 충실해졌다. 포천향교나 반월산성 같은 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등 문화창달면을 보다 심층있게 다루었으면 한다.
도움주신 분 김창종 본지 자문위원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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