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당시 자료 엮어 ‘전투감각’ ‘전장감각’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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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훈센 총리실에서. |
약봉 할아버지의 28대손으로 포천을 정신적 지주의 고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서경석 중장. 서 중장은 고려대 ROTC 출신으로 동기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국가에 봉사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객원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서 중장은 월남참전 당시 매일매일 기록했던 내용들을 책으로 엮어 『전투감각』과 『전장감각』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각 사단과 군단을 순회하면서 정훈교육을 하러 다니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6군단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포천의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는 포천인이 하나되어 포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해결에 적극 나서줄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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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중장의 가족(백순휘 여사와 서아람 양). |
▲포천시 설운동 약봉 할아버지의 후손이라고 들었습니다. 장군님께 포천은 어떤 고장이었습니까? =저에게 포천은 한마디로 정신적 지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봉 할아버지 28대손으로 군생활을 하면서 진급할 때마다 포천을 찾아 예를 올리곤 했습니다. 6군단장으로 취임하면서 포천에 대해 다시 한번 애정을 키우게 됐습니다. 오성과 한음 선생을 비롯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재를 배출한 선현의 고장인 포천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6군단장으로 재직할 당시 송우리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소주도 한잔 기울이고 또 약봉 선생의 묘소를 정리하는 일도 빼먹지 않는 일과 중의 하나였습니다. 현재도 포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과 딱지치기 놀이를 하면서 지낸 친구 중에 송우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을 지낸 김삼겸 이라는 친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외에도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방앗간집 머슴, 이발소에서 머리감아 주던 친구 등 그 시절만 생각하면 한참동안이나 아련한 추억의 세계로 빠져들곤 합니다. 저는 송우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했습니다. 송우파출소에 근무하던 ‘소사’가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고 그래서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려대학교 ROTC 출신으로 동기들 중 마지막까지 군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군에 대한 평소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군인은 누구나가 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조직의 규율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마음자세 또한 필수조건인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될 수는 없지만 군인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실질적인 선진국 진입은 물론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충분히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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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으로 진급하던 90년 노태우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포천은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로 낙후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포천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6군단장 재직시설에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현재의 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포천시민들이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를 위해 하나로 뭉친다면 언젠가는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군(軍)의 전투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진지방어 위주였지만 이제는 각종 테러 등 화학전에 대비해 시가지 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서경석 중장은 월남전 당시 전투현장의 생생한 자료를 수집해 『전투감각』 『전장감각』이라는 바이블과 같은 저서를 집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 중장은 『전투감각』은 미국에서도 영역해서 자료화할 정도라고 귀띔한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당시의 자료를 매일매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자료의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직접 전투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감을 줘 군 관련 논문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월남 참전 당시 기억에 남는 전투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도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는 전투가 있습니다. 1969년 7월 10일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대위로 맹호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월맹 정규군을 기습 공격한 일명 ‘깟손 계곡 전투’입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 총탄이 떨어지고 급기야 육박전 상황까지 가게 됐는데 평소 군 생활 중 속을 썩이던 친구들이나, 말을 잘 듣지 않는 녀석들이 더 훌륭하게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 때부터 병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모든 병사가 자식처럼 느껴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면서 지내십니까? 근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 고려대 객원교수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1학기에는 손자병법을 풀이하면서 전쟁론과 전쟁사에 관한 ‘전쟁과 국가’라는 강의를 하고 2학기에는 ‘지도자론(Leadership)’에 대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반 국민들은 군에 대한 인식이 썩 좋은 편은 아닌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군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재 일반 국민들에게 반공주의자가 마치 반민족주의자나 반민주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말하고 있는 ‘혁명의 성숙기가 도래하면’이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시기가 차츰차츰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현실을 떠난 이상은 이상이 아니라 허상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현실직시가 우선입니다.
▲포천신문은 포천시민을 비롯한 인접 시·군민의 대변자 역할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포천신문이 나아갈 방향이나 당부사항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참여와 실천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만 앞서서는 안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처럼 포천신문이 모범이 되어 주십시오. 또한 대정부투쟁을 줄기차게 해야 합니다. 실제 포천지역은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발이 묶여 발전이 더딘 게 사실입니다. 포천신문에서 여론화하여 빠른 시일내에 해제될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 ‘하나되는 포천’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도움주신 분 김창종 본지 자문위원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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