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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51]한국 영상제작의 개척자 이규임 교수

인터뷰-동아방송대학 이규임 교수를 만나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영상제작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온
이규임 교수.
국립영화제작소
영화감독,KBS방송국 PD,교통관광TV
제작본부장,동아방송대
영상제작과 교수 등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이 교수는
오로지
영상제작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한국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던
이규임 교수.
정년을 1년 앞두고도
영상제작에 관련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나보았다.


▲이규임 교수가 걸어온 길
1941년 가산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포천을 떠나온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고향 포천을 찾는다.
가산면 방축리에 선산이 있고 둘째 형수님이 포천에 거주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고향땅을 밟을 때마다 화봉산과 왕방산에서 뛰어 놀던 어린시절 추억이 새록새록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산초교(21회)와 가산중 2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유학을 떠난 이 교수는 서라벌고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앞으로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으로 서라벌예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게 된다.
서라벌예대 졸업 후 1966년부터 1978년까지 국립영화제작소에 근무하면서 이 교수는 뛰어난 영상미를 발휘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 지평을 열기 시작했다.
‘신라쌍분(1975년)’으로 대한민국 옥조근정 훈장을 받으며 이 교수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훈장은 건국이래 최초의 문화훈장이었다.
‘신라쌍분’과 ‘안압지(1976년)’라는 작품의 발표는 일본에서 ‘한국미술5천년전’을 개최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남분(1977년)’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국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8년부터 1994년까지 KBS방송국 프로듀서로 재직하는 동안 그의 작품활동은 절정에 달한다. ‘한국의 자연새(1979년)’ ‘태권도(1980년)’ ‘동남아의 아동교육(1981년)’ ‘신안유물선(1991년)’ 등이 각종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면서 입상을 하게 된다.
특히 포천 수목원에 서식하는 크낙새를 촬영한 ‘한국의 자연새’라는 작품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침울해진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킨 계기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이 교수가 만든 다큐멘터리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한국 고유의 정서와 사상이 담긴 문화다큐 제작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의 ‘안압지’라는 작품을 통해 안압지가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수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88서울올림픽 당시 필요성을 미리 예측하고 ‘Facts About Korea’를 제작 배포해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을 사전에 세계 여러 나라에 홍보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이런 그의 능력이 인정돼 이 교수는 제34회 스페인 온다스상(1987년), 제42회 이태리상(1990년), 제6회 일본 세계TV영상제(1990년), 제12회 캐나다 반프TV페스티벌(1991년)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국제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규임 교수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후학양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대학원 진학과 해외연수 등을 통해 그 자신이 먼저 스스로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KBS방송국 프로듀서 시절 방송연수원 교수로 활동했다.
지금은 1997년부터 동아방송대학의 요청으로 현재까지 영상제작계열 학과장으로 재직중이다.
이 교수가 강의하는 것은 방송편성론, 감독연출론, 방송문장론이다. 학생들에게 혹독할 정도로 수업을 진행해온 이 교수다. 학기 중에 과목당 적어도 24번의 시험을 치렀고 12개의 칼럼을 읽고 12편의 비디오를 보고 80점 이상 점수를 받아야 학점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재수강자가 2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여러분의 상대는 서울대, 연ㆍ고대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국제무대에 나가서도 밀리지 않아야 합니다. 국제무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칠 줄 모르는 실험정신! 번득이는 창의력! 이것이 여러분의 무기입니다. 실험정신과 창의력으로 무장하세요. 창작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남이 안 하는 것과 남이 못하는 것을 하는 것이 창작입니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하고 남이 못 하는 것을 하는 그러한 장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이 교수가 2002년 사은회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말한 내용이다. 학생들에 대한 이런 바람이 있었기에 그토록 학생들에게 혹독한 수업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그 자신 역시 4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영상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영상언어란 영상에 의미를 담은 것을 말합니다. 영상에 의미를 담는다는 것은 영상에 생각을 담는다는 것이요, 영상에 사상을 담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관련분야의 관찰과 통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규임 교수가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의 개척자라 불리는 이규임 교수. 그는 지금 영상제작의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후학들을 위해 영상관련자료를 정리하여 영상보감을 만드는 것이 이 교수의 꿈이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루에 6시간씩 자료를 챙기고 입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2000년, 2001년, 2002년 영상관련자료 목록집을 정리했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 교수는 다짐했다.
이러한 이 교수의 노력이 있기에 우리나라 영상제작의 미래는 그지없이 밝기만 하다.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이공계가 활성화 되도록 교육사업에 주력해야 합니다. 현재는 과학이 세계의 중심입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겠지만 지자체에서도 이공계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입니다.”
▲포천신문에 당부 한마디
“신문의 사명은 진실을 알리고 평론을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진실이 왜곡된 보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독자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객관성 있는 평론을 통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상훈
-1975년 대한민국 옥조근정 훈장
-1967년 공보부장관 표창
-1973년 국립영화제작소장 표창
-KBS사장 표창 5회
-2002년 동아방송대학 최우수교수상


▲저서
-영상제작 Ⅰ, Ⅱ
-영상편집이론
-현대사회와 언론
-남북통일의 가능성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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