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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50]참스승 故 정동준 박사와 아들 정장훈 교수

인터뷰-정장훈 명지대학교 교수를 만나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부인 황향희 여사, 5남매와 함께.

1942년

포천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41년간 학자와

교육자로서

참되게 살다

1983년 순직한

故 정동준 박사.

그는 마지막까지

학교 발전을 위해

업무에 매진하다

자신의 직무실에서

쓰러졌다.

그만큼

교육밖에 모르는

외곬 인생을 살았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 앞에

‘참스승’이라는

수식어를 주저하지 않고

붙일 정도로

그의 인품과

교육자로서

이룩해 놓은 업적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故 정동준 박사의 삶을

되짚어 보며

‘참스승’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선생님은 있으나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요즘 세대에 너무 많이 회자되고 있다. 교권이 무너지고 스승과 제자사이가 아닌, 단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으로만 여겨지는 요즘 풍토. 그럴수록 우리는 ‘참스승’을 그리워하고 갈망한다.

이런 때에 포천의 많은 사람들은 故 정동준 박사를 주저없이 ‘참스승’이라고 말한다. 순직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존경받는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는 故 정동준 박사. 그의 장남 정장훈 교수를 만나 선친의 삶을 들여다 보았다.


▲故 정동준 박사가 걸어온 길

1925년 5월 포천 신북면 기지리에서 태어난 故 정동준 박사는 포천신북국민학교 1회 졸업생이다. 17세 되던 해 故 정 박사는 포천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해방 후 의원면직을 당했으나 교육자의 길을 걷기 위해 경기사범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5개월만에 경기사범학교를 수료하고 1946년 9월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한다.

그렇게 학업에 매진하던 중 6ㆍ25사변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게 됐고 1951년 의성공업고등학교 교사로 다시 교직에 발을 디디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대 사범학교에 복학해 학업을 끝마치고 고등학교 수학과 정교사 자격을 취득한 후 1954년 성동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게 된다.

故 정 박사는 성동공고에서 일반 교사로 재직하면서 한글, 국사 강사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하고 이화여대 사범대학에 출강하는 등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1960년부터 4년간 이화여대 부속 고등학교에 교감으로 있으면서 9백여명의 학생들 이름을 거의 모두 기억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상담을 해주었던 자상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렇게 항상 노력하고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 자세로 교직생활을 해오다 1964년 명지대학 조교수로 부임한다. 그는 발전기에 있는 명지학원에 부임해서 사무처장과 학장서리 등을 역임하며 오로지 학원발전과 교육발전에 매진했다.

1974년에는 명지실업전문대학의 초대 학장이 되어 우리나라 전문대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1983년 59세의 나이로 순직할 때까지 故 정 박사가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돼 1983년 12월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다음은 故 정동준 박사의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공적조서의 발췌 내용이다.

▶‘기독교윤리’ 강좌의 개설 ▶승공 민주 교육의 창달을 위해 육군 제6군단과 자매결연을 맺어 군ㆍ민의 친선도모에 앞장 ▶산학협동의 활성화 강화 ▷학과별 산학협동 위원회 발족 ▷14개 학과에 야간강좌 개설 ▷부설 전자계산소, 디자인연구소, 산업경영연구소 설치 유관산업체와 상호협력사업 전개 ▶지역봉사사업 전개 ▷비정규 특별과정 개설하여 지역주민, 청소년, 근로자에게 교육기회의 혜택 제공 ▷새마을 유아원 설치 빈곤가정 유아 위탁교육 사업 전개 ▶고 정박사가 명지전문대 학장으로 재임하던 1979년부터 문교부에서 실시하는 전국 전문대학 운영평가에서 명지전문대가 매년 1위를 함으로써 1983년 문교부 장관 단체 표창 수상 ▶1979년부터 문교부 교육정책 심의위원 및 대학입학 예비고사 위원에 위촉, 대학교육 개혁사업(실험대학 및 대학특성화 제도)을 위한 정책 입안과 전문대 발전을 위한 창의적인 제안(개방대학 제도 입안)을 하여 국가 교육 제도 발전에 기여 ▶1981년 문교부 실업계 전문대학 평가위원장, 한국직업교육학회 발기이사로서 1980년 동학회를 발족시킴으로 직업교육진흥선도사업 추진


▲故 정동준 박사를 추모하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한 ‘참스승’ 故 정동준 박사. 그가 순직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묘소를 찾아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의 영결식은 최초의 명지학원장으로 치러졌고 각계 인사와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었다. 여러 인사들이 쓴 故 정 박사에 대한 추모글을 보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명지학원 전 이사장 유상근 박사가 쓴 故 정 박사를 추모하는 글의 일부를 보면 이렇다. ‘당신은 말없이 묵묵히 실천하시는 분으로 자기 공을 평생토록 한번도 내세운 일이 없으셨고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도 그 공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리셨습니다. 모든 잘못은 자기 탓이요 자기 불찰 때문이라고 남의 잘못까지 당신이 떠맡고 억울하고 언짢은 모든 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기조차 않던 분. 처음부터 끝까지 착하고 정직하고 청렴하게만 살다 가신, 평생토록 자신의 안락이나 휴식조차도 할 사이 없이 오로지 올바른 교육만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다 교육현장에서 쓰러져 순직하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당신은 한국 교육계의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었고 ‘참스승’이었습니다. 재학생, 졸업생 한사람 한사람에 이르기까지 웃어른을 공경하는 일, 교실교육, 현장교육, 실습교육, 신앙교육, 유치원교육, 일선장병위문, 새마을어린이교육 등 당신의 손길과 정성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또한 30년지기 친구인 전 명지국민학교 류맹수 교장의 추모글을 보면 ‘교육이란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며 몸소 실천하던 그에게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밝히며 故 정 박사에 대한 존경의 뜻을 감추지 않았다.

‘그분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예의바르기로 유명하고 신의가 있고 심덕이 깊어 많은 분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왔다. 그 바쁜 중에도 어려운 고향후배에게 베풀어준 따뜻한 후덕은 포천사람이면 누구나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를 아는 동료, 친지, 후학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고향후배들은 그분을 무던히 사랑하고 또 존경한다’며 고향후배인 강창성 의원 역시 추모글을 통해 고인의 성품을 극찬했다.


▲故 정동준 박사의 장남 정장훈 교수.
▲아들 정장훈 교수

현재 명지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故 정동준 박사의 장남 정장훈 교수.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걸어온 삶을 봐왔기에 교육자의 길이 가장 값진 삶이라고 느꼈었다. 교육자로서 너무나 훌륭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도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자식에게조차 큰 소리 한번 없으셨고 무엇이 옳고 그름을 말씀하시기보다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시며 스스로 깨달아 바른 길로 걸어가길 원하셨던 분”이라고 아버지에 대해 회상하는 정장훈 교수.

그는 “아버님에 비하면 학자로나 교육자로서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의 모델이 되어버린 아버님처럼 살기 위해, 아니 아버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라며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참된 교육자로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한 정장훈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화학과 이학박사(The Ohio St

ate University, Department of Chemistry, Ph.D.) 학위를 취득해 1998년부터 명지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장훈 교수는 ▷신 물질 합성 연구 : 유기 금속 화합물 합성, 신소재 합성 연구 ▷촉매 합성 및 반응 메카니즘 연구 ▷차세대 발광 재료 합성 연구 : 단분자 유기 발광 재료 합성연구 등을 통해 활발한 연구활동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신북면 기지리 고인의 선산.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아버님의 묘소가 신북면 기지리 선산에 있어 자주 포천을 찾습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친환경적인 도시로 발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포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본지에 대한 당부사항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포천신문에 많은 관심을 갖으셨을 것입니다. 아버님을 대신해 얘기하겠습니다. 지역발전이 잘 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여러 분야에 있어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기사를 우선해서 실어주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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