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장 시절 국민과 함께하는 군대 만들기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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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윤성호 여사와 자녀들. |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젊은 시절부터 기골이 장대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음직한 김영철 전 육군 소장.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에서 장군의 모습이 역역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34년의 군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인상일 것이다. ROTC 소위로 시작해 육군 소장까지 군대에서 34년의 세월을 보내며 상관에게 신임받고 부하에게 존경받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장군이었던 김영철 전 육군 소장. 예편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장군의 품위가 그대로 묻어나는 김 전 소장을 만나보았다.
▲김영철 전 소장이 걸어온 길 포천 내촌면 음현리에서 아버지 김명현 옹과 어머니 김재희 여사 사이에 1남4녀 중 넷째로 태어난 김영철 전 육군 소장. 그가 포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50년대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웠던 시절, 학교 월사금이 없어 공부를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김 전 소장은 부모님 덕에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앞선다. 어쩌면 그 은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례로 고교 재학시절 그는 잠 안 오는 약을 복용해 가며 공부했다. 그 때 평균 수면 시간은 하루 2∼3시간 정도였단다. 심지어 어머니가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는 아들의 방을 보고 그만 자라고 애걸복걸할 정도였다. 또한 영어사전을 외우고 낱장을 불에 태워 물에 타서 먹기도 했다.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김 전 소장은 고교 졸업 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하게 됐다. 그 때 시골 출신으로 도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느꼈던 괴리감으로 잠시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그 특유의 승부욕으로, 새벽 4시 통금 해제 시간에 맞춰 학교 담을 넘어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가며 공부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면서 그는 ROTC 4기로 장교에 임관하며 군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김 전 소장은 “솔직히 직업 군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전역할 시기에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해 전역이 늦어지면서 장기복무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어쩌며 그것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그가 말했듯 군과 그의 인연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군생활을 하는 동안 남들보다 뛰어난 추진력과 통솔력을 인정받아 군생활을 시작한지 23년 만에 장군이 되었다. ROTC 출신으로 장군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로 김 전 소장의 끊임없는 노력이 가히 짐작된다. 준장이 된 후 3년 만인 1993년 그는 소장으로 진급하며 육군 제12사단장으로 12만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지휘권을 갖게 된다. 2년여간 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총기사고, 탈영사고, 차량사고 등 강력사고가 1건도 없었다는 것이 김 전 소장에게는 최고의 자랑거리다. 또한 ROTC 출신으로 국군 정보사령관을 역임한 것은 김 전 소장이 유일하다. 군에서는 이것을 전무후무한 일로 평하기도 한다. 이렇듯 군에서 김 전 소장의 능력은 탁월했다. ‘명예는 상관에게, 책임은 나에게, 공은 부하에게’라는 군의 명언을 철저히 이행했던 김영철 전 소장. 예편 후 지금도 자신을 찾아주고 알아주는 부하들이 있어 군생활에 더욱 자부심을 느낀다는 김 전 소장은 천상 장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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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정보사령부 사령관 취임식 때. |
▲인생철학(군대철학) 김영철 전 소장의 인생에서 군대는 절대적이다. 다시 태어나도 군에 다시 입대하겠다는 김 전 소장이 말하는 그의 인생철학(군대철학)을 들어봤다. 첫째, 신뢰와 의리를 가장 중요시한다. “한 조직의 힘과 근원은 인간관계이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믿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둘째, 간부는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道를 중시해야 한다. “간부의 도는 손자와 오기가 말한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 덕(德)으로써 이것이 잘 조화를 이뤄야 간부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셋째,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견지하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김 전 소장은 “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부정적인 사고로 일을 시작하면 될 수 있는 일도 어려워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넷째, 법과 규정을 잘 지키며 솔선수범하자는 것. “사단장 시절, 내가 먼저 방독면을 쓰고 화생방 훈련을 했다. 매달 1회 4시간씩 쓰고 있었다. 물론 힘들었지만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최고의 통치 방법이기에 계속 그렇게 했었다”고 말하는 김 전 소장이다. 다섯째, 국민과 함께하는 군대 만들기다. “지난 34년의 군생활 동안 국토를 보위하는 군대, 국민을 위한 군대, 국민에게 사랑받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사단장으로 있던 시절 지역 주민들과 주기적인 의사소통(반상회 월1회)의 기회를 만들고 노인정 방문, 노인휴게소ㆍ게이트볼장 건설, 장학금 전달 등 주민과 함께 하는 군대가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인생철학(군대철학)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다.
▲포천시 발전을 위한 제언 “전철역에서 포천의 시승격 광고를 보고 정말 반가웠다. 그렇듯 포천에 유명한 막걸리, 갈비, 버섯 등을 좀 더 홍보해서 알렸으면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공장이 들어서도록 허가하지 말고 계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산정호수의 대규모 레저타운 조성도 한번 고려해 볼 만하다.”
▲포천신문에 대한 당부사항 “대외적으로 포천을 알리고 포천이 하나로 단합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구심점의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예를들면 포천신문에서도 체육대회를 개최해 지역의 화합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계획 육군 소장 예편 후에도 백화점을 경영하며 쉴세 없이 달려온 김영철 전 육군 소장. 그는 현재 2남 1녀 모두 출가시키고 부인 윤성호 여사와 편안한 노후를 설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고향 내촌에 집을 마련해 부부가 주말마다 그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7년째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며 고향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는 김 전 소장은 앞으로도 후학양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경력 및 훈ㆍ포상 -파월 백마 29연대장 -제12사단장 -국군정보사령관 -CIMA1020 사장 -현 국방부 군사연구위원 -무공훈장 인헌장 -보국훈장 천수장 -대통령 표창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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