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촌의 맑은 시냇가를 놀이터 삼아 뛰어 놀던 유년기의 기억이 아련해요. 그 때의 포천과 지금의 포천은 너무도 많이 변했어…”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사무실을 찾은 기자와의 첫 대면에서 잠시 고향 포천을 떠올리는 허항무 전 공군 준장. 그는 7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내촌에 거주한 내촌 토박이로 내촌초등학교 14회 졸업생이다. 올해 나이 일흔인 허항무 전 준장은 올 봄 경영하던 사업체도 정리하고 본인이 맡고 있는 직책을 하나씩 놓으며 편안한 노후를 계획하고 있다. 노년의 편안함이 마지막 작은 소망인 허항무 전 공군 준장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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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항무 전 준장이 걸어온 길 |
허항무 전 준장은 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 당시만 해도 포천에는 진학할 고등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망하던 성동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한다. 평소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 덕에 항상 상위권 성적이었던 허 전 준장은 고교 2학년 재학 중에 공군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해 공사 6기로 사관생도가 된다. 같은 학교 3학년 선배 8명이 같이 시험을 치렀지만 허 전 준장만이 합격한다. 이것은 당시 성동공업고의 최대 화제거리이기도 했다. 어쩌면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군대도 가야했고 공사졸업으로 학사 학력이 인정되며 해외 유학의 기회도 제공된다는 공사 광고에 마음이 끌렸다. 또 공군의 기술은 현대 문명의 첨단화를 의미했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허 전 준장은 공사 지원의 이유를 설명했다. 1958년 공사졸업 후 비행기를 몰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질 않아 통신전자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허 전 준장. 전자통신 업무를 하다보니 공부를 더 해야할 것 같아 대위로 복무하던 1962년에 한양대 전기공학과에 편입한다. 이듬해인 1963년 미공군 통신전자학교에 유학을 가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공군 통신학교 통신참모과정을 수료하고 미공군 통신전자 참모학교를 졸업했다. 또한 1970년 공군대학 고급지휘 참모과정을 수료하며 전문지식을 갖춘 공군장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0대 때부터 항상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키워나가며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했던 허 전 준장. 그는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군생활에 최선을 다했고 1981년 마침내 장군이 된다. 장군이 된 후에도 허 전 준장은 연세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는 등 끊임없이 자질향상에 노력했다. 그는 공군통신 장교로 임관된 것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오직 전자통신 분야에서만 군생활 30년을 보냈다. 그 세월동안 공군작전사령부 통신참모, 공군7항로 보안단 통신부장, 공군통신전자학교장, 공군본부 통신차감, 공군본부 통신감 등의 보직을 거쳤다. 아마 공군 통신분야 주요 보직을 모두 섭렵한 장군은 허 전 준장뿐일 것이다. 그는 공군본부 통신감을 하는 동안 작전 통신망 반공 레이더의 현대화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요즘 가끔씩 고속도로를 지나다 산봉우리에 설치된 레이더를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는 허 전 통신감이다. 또한 육해공군이 따로 사용하던 국가 통신망을 통합하자는 그의 제언으로 국가 통신망 단일 기구 운영이라는 성과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런 굵직한 공로를 남긴 채 1983년 12월 허 전 준장은 공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전역당시 그의 현격한 공로가 인정돼 공군참모총장 공로표창이 수여되기도 했다. 그는 예편 후 삼성반도체에 상무이사로 입사하게 된다. 통신전자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는 허 전 준장을 필요로 했던 삼성반도체의 끈질긴 입사 제의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간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하다 1989년 성보시스템이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공군 장교로 군에 있을 때부터 알았던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외국기업의 제품을 국내 기업에 소개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이 부문에서 그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알 수 있다. 지금도 외국인 친구들과 자주 왕래하고 연락하며 지낸다는 허 전 준장은 “외국인과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작은 의미의 외교활동이라 할 수 있다”며 “항상 외국인들을 대할 때 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 행동한다”고 말했다. 역시 공군 장성다운 면모다. 1997년에는 현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 국민회의에 입당해 짧은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0년 총선 때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연ㆍ포천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도 예상됐었다. 그러나 그 당시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로 자민련의 총재였던 이한동 의원이 출마해 정치에 뜻을 펼쳐보지 못했다. 다시 정치를 할 마음이 있는 지 의중을 묻자 “짧은 기간 정치를 맛봤지만 정치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젠 나이도 있고 전혀 할 생각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현재 공군통신분야 예비역 모임인 삼공회 회장을 비롯해 공군전우회 부회장, 내촌종친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고 있는 허항무 전 준장은 이제는 이런 직책들을 하나씩 놓으려 하고 있다. 지난 봄에 자신이 운영하던 성보시스템도 정리한 상태다.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는 허 전 통신감의 준비인 셈이다. 항상 준비성이 투철한 그이기에 그의 의도대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리라 믿는다.
▲포천시 발전을 위한 제언 “우선 시승격을 축하한다. 시에 걸맞게 모든 것이 장기적인 계획아래 발전이 되야 한다. 그러려면 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모두가 자기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일한다면 포천은 분명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할 것이다. 또한 예부터 산수가 좋기로 유명한 포천을 잘 관리해서 관광객 유치에도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본지에 대한 당부사항 “포천에 이런 신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문은 사회의 가이드 역할을 해야한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정보 제공을 하고 공직자의 잘못은 따끔하게 꼬집어 줄 수 있는 정론지로 성장하길 바란다”
▲수상경력 -1971년 국방부장관 공로표창 -1976년 국무총리 공로표창 -1978년 건국 제30주년 기장 -1979년 작전사령관표창 -1980년 보국훈장 3.1장 -1981년 교육사령관 공로표창 -1983년 공군참모총장 공로표창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허항무 전 공군본부 통신감. ▲장군 진급 직후 부인 이성환 여사와 함께. ▲미공군통신전자학교 참모과정 유학 당시(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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