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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46] 이석보 전 재경포천시민회장을 만나다

재경포천시민회 태동의 중추, 이석보 교장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중국 단둥지방 선교 활동… 활발한 노년 보내
 ▲이석보 전 재경포천시민회장.

※편집자주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작은 텃밭에서 노년의 부부가 다정하게 허드렛 일을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이석보 전 재경포천시민회 회장을 만나기 위해 신북면 심곡리에 위치한

그의 주말농장을 방문했을 때의 풍경이다.

군내면이 고향인 노부부는 고향 포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43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지금은 교회 활동과 포천장학회 이사, 포천재경시민회 고문으로

활발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석보 전 회장. 그는 포천의 원로로서 포천 발전을 위해 미력하나마 자신의 노년을 이 곳 포천에서 보내려 다짐하고 있다.


10년 전 신북면 심곡리에 집을 짓고 일주일에 한번씩 이곳을 찾아 작은 텃밭에서 야채 등을 재배하고 있는 이석보 전 재경포천시민회 회장. 1년 후쯤 아예 포천으로 돌아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서 노년을 보낼 생각이란다. 세월이 지날수록 ‘고향 까치를 봐도 반갑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석보 전 회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재경포천시민회가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경포천시민회 태동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경포천인들의 대동단결에 이석보 전 회장의 공로가 지대함을 인정하고 있다.

43년간 교직에 몸담으면서 국민훈장을 비롯한 교육부장관상, 한국청소년연맹 무궁화장 등 그가 받은 표창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중국을 방문해 선교활동을 펼치기도 하며 활발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석보 전 회장을 만나보았다.


■포천에서의 어린시절

=나는 포천초등학교와 포천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배재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학교에서 생활했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일제 말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갖은 노동에 동원돼 손을 자주 다쳤었다. 그 때 당시 손에 난 상처가 아직도 흉터로 남아있을 정도다. 또 조선말을 한다고 해서 혼났던 어두운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이셨던 최학규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찌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주셨던지… 그분은 내가 교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나의 인생 모델이었다. 나뿐 아니라 초등학교 동창 대부분이 최학규 선생님을 잊지 못해 제야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묘소를 60년대 중반에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묘소관리가 너무 엉망이어서 우리 동창들이 비석을 세워 드리고 깔끔하게 정리를 하기도 했다. 훌륭한 선생님에 대한 제자들의 작은 보답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해군함장이 되고 싶어했다. 해군의 하얀 제복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실제 고3 때 해사에 지원하기도 했으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해군함장의 꿈은 포기하고 말았다. 교육자의 길로 가라는 하나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재경포천시민회의 설립

=재경포천시민회는 어떻게 보면 얼떨결에 생기게 됐다고 할 수도 있다. 1984년에 현 이한동 국회의원이 전두환 전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되어 이를 축하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포천초등학교 34회 졸업생들이 모인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처음에 우리 동기들만 모여서 축하 자리를 준비했는데 포천초교 33회, 35회 졸업생들도 참여하게 되고 점점 많은 재경포천인들이 참여하면서 170여명이 참석한 축하연이 되었다. 그런데 이날 권기하 총장님이 갑작스레 재경포천군민회를 만들자고 제안해 그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됐고 축하연을 준비한 주축이었던 나를 비롯한 12명이 재경포천군민회 창립준비를 시작하게 됐고 84년 9월 22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광순 1ㆍ2대 회장을 시작으로 내가 3대 회장, 이한동 4대 회장, 이사순 5대 회장, 정동화 6ㆍ7대 회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경포천시민회의 초창기 때는 기금모금에 전력을 했고 군민회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어느 정도 자리를 잡도록 노력했다. 그 이후에 소년소녀가장돕기, 수재의연금 모금 등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다.


■포천의 문제점

=우선 포천은 교통문제가 해결되야 한다. 포천이 발전하려면 서울과의 왕래시간 단축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지하철 7호선이 연장되었으면 한다. 이미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니 만큼 협의가 잘 돼서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또한 포천교육은 너무 미흡하다. 지금 포천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서울이나 의정부로 진학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수 학생들을 지역에서 키우기 위한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그 예로 포천고와 포천여고 분리를 하는 것도 포천교육 정책이 바뀌는데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천에 많은 유적지를 계승 발전시켜 자랑거리로 삼고 우리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한다.


■앞으로의 계획

=우선 장례문화를 바꾸려고 한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집안부터 납골당을 만들기로 했다. 집안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으나 내가 지금은 우리 집안의 최고 어른이기에 밀어 부쳤다. 좁은 땅덩이에 죽은 사람까지 넓직히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면 뭣하겠는가?

그리고 시신을 기증할 계획이다. 지금 의대생들이 실습할 수 있는 시신이 턱없이 모자르다고 한다. 어차피 죽으면 썩을 몸인데 그렇게라도 쓰이면 더 유용한 것 아닌가?

그리고 나는 기독교 신자다. 가정에서 복음할 것이다. 53년부터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고 내가 근무했던 학교도 기독교 학교였다. 우리 며느리들도 모두 기독교인이다. 또한 매년 중국 단둥지방을 방문해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포천신문에 바라는 점

=포천신문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신문으로 포천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등불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나? 포천이 발전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좌표를 세우고 키를 잡아줘야 할 막중한 역할이 포천신문에게 있다. 정의가 우선되는 신문이 되길 바라고 이익보다는 지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일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배분하는 신문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느낄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당부한다.


■학력 및 약력, 수상경력

-포천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평택고등학교 교사

-포천고등학교 교사

-숭실고등학교 교사

-배재중·고등학교 교사

-신일중·고등학교 주임교사

-정의여자고등학교 교감

-정의여자중학교 교장 정년퇴임

-현 신성북교회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현 학교법인 삼산학원 이사

-재단법인 포천장학회 이사

-재경포천시민회 고문

-1994.5.15. 교육부장관 연공상

-1999.8.28. 한국청소년연맹 무궁화장

-1999.8.31. 국민훈장 동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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