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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45] 양주석 전 교육인적자원부 편수국장을 만나다

한평생 교육계에 몸담은 전 편수국장 양주석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산행 즐기는 노년… 포천후학 양성하고 싶어






 ▲양주석 전 편수국장


 


※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포천시 영중면 금주2리에서 태어난 양주석 전 교육인적자원부 편수국장.
한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영평초등학교에 입학해 4학년까지 다니다 가까운 곳에 금주초등학교가 생겨 금주초로 전학,
2회 졸업생이 된다. 겨울이면 영평천변을 따라 불어오는 칼바람이 아직도 생생하고 봄, 여름, 가을이면 천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등 고향 포천의 기억이 손에 잡힐 듯 하다고 말하는 양주석 전 편수국장.
봉래 양사언 선생의 23세손으로 자신이 졸업한 모교의 교사를 시작으로 탑동초를 거쳐 서울중·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거기서 정년퇴직했다. 틈틈이 산행을 즐겨 히말라야에 도전할 만큼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지닌 양주석 전 편수국장은 남은 여생을 후학 양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양주석 전 편수국장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2리에서 태어난 양주석 전 교육인적자원부 편수국장은 금주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 서울중·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한평생 교육계에 이바지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금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중·고등학교, 고려대를 졸업한 양주석 교장은 세계화 교육의 물결속에서 인성교육에 평생을 몸바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중앙교육연수원의 입시제도 연구실장을 역임해 KBS 등 유력매체에 입시제도와 관련한 많은 인터뷰를 했음은 물론 후세들을 위해 많은 자료들도 집필했다. 양주석 교장이 그동안 거쳐온 교육현장을 뒤쫓아보자.
양주석 교장은 1952년 10월 31일 교단에 첫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36년 11개월 동안 교육현장과 연구기관 및 교육행정 전문가로 남다르게 활약한 공로가 커 서울 교육상 중등교육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2년부터 70년까지 8년동안 서울고등학교 근무하면서 문교부 지정 교도 활동 연구학교의 주무를 맡아 문제 학생의 사례 연구에 힘써 왔고, 당시 한국 교단에서 움트기 시작한 카운슬러의 정착에 불철주야 노력했으며, 생활지도주임, 교무주임으로서 열정을 다해 학교 발전에 기여했다.
65년도에는 반공 교육 시범학교의 주무를 맡아 확고한 승공 의식을 구현, 반공 교육의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을 도모했으며, 교무주임으로서 교직원들의 연구 분위기 조성, 학급 지도 방법의 개선, 학사 및 교무행정의 효율화를 기하여 대학 진학률이 전국 인문계 고교의 최상위권에 진입하는데 기여했다.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로 재직시에는 중학교 무시험 제도의 시행을 담당해 정착시키는데 노력했고, 72년도에는 고등학교 평준화 작업 실무를 맡아 학교시설, 교원의 수급문제, 학군 설치 및 학생 배정 등 제반 업무의 기반을 닦았다.
77년부터 82년까지 용산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시에는 ‘전국 정신 교육 연구회(현 민주시민 교육 연구회)’의 조직 과정에서 총무를 맡아 연구회의 전국적인 운영에 힘씀은 물론 교과 연구회 활동의 활성화를 이룬 가운데 수차례의 연구 발표회를 가졌으며, 농구부 활동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바 전국대회 제패의 꿈을 이루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84년부터 1년간 중앙교육연수원 평가 관리부 입시제도 연구실장으로 있으면서 172면에 이르는 ‘입학 학력고사 성적과 고등학교 내신 성적의 예언 타당도에 관한 연구Ⅰ,Ⅱ’의 논문을 발표, 대학 입시 제도의 현실적인 정착에 기여키도 했다.
문교부 장학관으로 있을 때에는 세계 각국의 역사 교과서를 검토, 한국에 대한 왜곡된 부분을 시정토록 했고, 특히 일본 국사 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시정(한국인 징병 문제, 국어 말살 정책, 안중근 의사 의거 문제, 정신대 및 관동 대지진, 임나 일본국 등의 제 문제)을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국사 교육 준거안’의 작성을 하게 되었으며(이 일은 독립 기념관 건립의 기초가 되기도 했음), 자유 시장 경제의 자본주의 경제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40여 종류의 경제 교육 교재를 편성했다. 또한 ‘통일 교육 방향의 재편성’ 업무를 맡아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효율화를 제고하는데 힘썼으며, 장애아를 위한 교육 과정을 편성하기도 했다. 이어서 제5차 교육과정 개정 작업 중에는 초ㆍ중ㆍ고(인문, 실업)에 걸쳐 300여권의 교과서를 개발, 재편수를 완성하는 방대한 작업을 완료했다.
89년에서 93년까지 영등포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면서는 노후된 학교 시설 개수 및 강당의 신설과 면학 분위기 조성에 힘쓴 결과 63%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했고 과학실의 정비 및 실험 실습실의 완비로 실험 실습 교육에 힘써 ‘과학 교육 우수 학교’라는 영예의 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특활반 교실의 증축과 특활반 수의 증가에 힘썼다. 동창회와 유대관계를 긴밀히 해 3천만원의 관악반 운영자금을 후원받아 13년 동안 활동이 중단되었던 45인조 관악반을 부활시켜 교내 ‘경희예술제’기간에 전교생들의 찬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한 서초구에서 주관하는 ‘서초예술제’에 참가해 서초구민회관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울고에 부임이후 민주적인 학교 운영으로 교직원의 인화 단결에 힘쓰고 과학 입국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과학실의 정비 및 실험 실습 기구를 교체했다. 교사들의 능률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각 교무실에 컴퓨터 시설 확장과 시청각 교육의 효율화를 위해 어학실을 정비, 첨단 장비를 시설했다.
매년 11월에는 ‘독후감 발표 대회’와 ‘우리 문화 및 역사 독서 토론 대회’를 열어 입상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또한 야구부 중흥에 온갖 정력을 쏟아 95년도 전국 고교야구 대회 3위와 더불어 여러 대회에서 4회의 입상을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고등학교 윤리교과서 편찬 연구 위원, 한국 교원 단체 연합회 대의원, 서울시 교총 연합회 대의원회 의장, 한국 국공립 인문고등학교장회 부회장, 서울시 국공립 인문고등학교장회 부회장직을 겸하면서 교육 행정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현재는 일선 학교의 강의에 다니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쁘지만 남은 여생을 포천의 후학양성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양주석 교장.
틈틈이 산행을 즐겨 이제는 히말라야에 도전할 만큼 강인한 체력이 더해진 양주석 교장은 교육계의 표본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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