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포천시민회 고문… 한글맞춤법연구 권위자 유명
재경포천시민회 고문으로 포천교육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권기하 옹.
권기하 옹을 그의 자택에게 만났다.
 | ▲포천의 초대 교육감과 교육장을 지낸 권기하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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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는 학력, 경력, 포천발전 기여도 등에 상관없이 무순(無順)으로 게재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평소 청렴하고 깨끗한 인품으로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 있는 권 옹은 8.15 광복 후 최초로 실시한 대한민국 제1회 중등국어교사 검정고시에서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권 옹이 더욱 대단한 것은 평생을 포천의 후학양성을 위해 애오라지 포천에서만 교육자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재경포천시민회 고문으로 지칠줄 모르는 정신력과 체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권 옹은 요즘 봉사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서울대 물리대를 나온 아들 순성(54)씨와 역시 서울대를 졸업한 며느리 온형순(50)씨와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권 옹을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권기하가 걸어온 길
권기하 옹을 언급할 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애오라지 고향 포천을 사랑해 약 50여년 동안 포천을 떠나지 않고 끝없는 외사랑을 보여준 권 옹은 초대 포천교육감과 교육장을 지낸 교육자이기 전에 지역에 대소사가 발생할 때마다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문제해결의 단초를 제공해 ‘포천의 어른’으로 칭송받고 있다.
한 교육자료집에 실린 권 옹에 대한 평가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다음과 같다.
『교육자(敎育者) 중(中)의 교육자(敎育者)로서 높이 평가(評價)할 수 있을 만큼 교육계(敎育界)의 원로(元老)로서 국리민복(國利民福)의 향상(向上)을 위(爲)해 노력(努力)하여 온 깨끗한 교육자(敎育者)로 정평(定評)을 얻고 있다. 홍안(紅顔)의 청년시절(靑年時節)부터 오늘날까지 사십사년간(四十四年間)을 교단(敎壇)에서 살았고 일생(一生)을 희생하여 온 권 옹이 일평생(一平生) 세운 공적(功績)은 다대(多大)하다. 원만(圓滿)한 성품(性品)과 공(功)을 모르는 봉공정신(奉公精神) 그리고 가정(家庭)보다 학교(學校)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권 옹의 고매(高邁)한 인격(人格)에 금상첨화(錦上添花)로 일반사회(一般社會)에 이르기까지 흠앙(欽仰)의 적(的)이 되고 있다. 향토문화(鄕土文化) 발전(發展)에 빛나는 업적(業績)을 장식(裝飾)하였고 연공표창(年功表彰) 공로표창(功勞表彰) 가정(家庭)의례 보급공로상(普及功勞賞) 등(等) 그의 인생사(人生史)를 대변(代辯)해 주고 있어 도는 오늘날까지 청렴일관(淸廉一貫)한 천품(天稟)에 그의 청백(淸白)한 성격(性格)과 오직 이 땅에 자라나는 귀여운 자녀(子女)만을 유일(唯一)의 생명(生命)처럼 아는 그의 투철(透徹)한 사명감(使命感)은 어제나 오늘이나 일관(一貫)한 봉사심(奉仕心)을 인생(人生)의 전부(全部)로 알고 있는 선생(先生)은 능숙(能熟)한 교육행정가(敎育行政家)요 저명(著名)한 교육가(敎育家)로 명망(名望)이 높다. 경기도태생(京畿道胎生)인 그는 강직(剛直)한 의지(意志)에 덕인(德人)으로서 평생(平生)의 고락(苦樂)을 교육생애(敎育生涯)에 받쳐온 선생(先生)의 찬란한 업적(業績)은 인생사(人生史)에서 영원(永遠)히 빛날 것이다. 취미(趣味)는 바둑이다.』
권 옹에 대한 칭찬 한마디 더 거들자면 현재 ‘포천을 빛낸 인물’ 시리즈에 실린 인사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권 옹의 제자들이다. 강창성 국회의원, 이한동 전 국무총리, 정동화 전 인천교대총장(현 재경포천시민회장) 등 권 옹이 길러낸 인재들이다.
이외에도 현재 본지에 포천의 명현탐구를 게재하고 있는 리효종 향토사연구소장과 포천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김창종 수필가를 비롯해 이진호 전 포천군수 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권 옹에게 교육을 받았다. 또한 권 옹은 건국이후 최초로 실시된 국어중등교사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을 정도로 두뇌가 명석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 | ■100세를 바라보는 장수비결
권 옹의 장수비결에 대해 며느리 온형순(50)씨는 “욕심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이제까지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시고 독립심이 강하신 분입니다.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은 없지만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을, 소식으로 드십니다. 교과서에 실린 그대로 실천하고 계십니다. 그게 최고의 장수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계십니다. 제가 한번도 누워 계신 걸 보지 못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포천은 예로부터 유명한 선현들이 많이 배출된 양반고을입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을 비롯해 봉래 양사언 선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인재가 많습니다. 고매한 선비정신을 가진 이런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선비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신포천의 정신적인 메카니즘으로 삼아야 합니다.”
■포천신문에 대한 당부사항
포천신문에는 새로운 포천소식들도 채워져 있어 너무 좋다고 말을 뗀 권 옹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항상 간절합니다.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에 선뜻 갈 수 없는 심정을 포천신문을 보면서 달래고 있습니다. 포천신문이 도착할 때면 구문이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포천소식들로 가득찬 신문이어서 항상 기다려집니다. 지금처럼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준다면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약력
-1908.8.16. 소흘읍 고모리 437 출생
-1928.3. 송우공립보통학교 졸
-1928.3.31. 포천공립보통학교 훈도취임
-1928.7.23. 당숙에게 입양
-1934.9.30. 신북공립보통학교 전근
-1939.4.1 송우공리보통학교 전근
-1952.12.2 포천중학교 교사
-1956.11.28. 포천교육청교육감 취임
-1960.12.5.21. 포천농업고등학교장 취임
-1968.4. 포천교육장 취임
-1973.8.16. 정년퇴임
■주소 및 연락처
-서울특별시 강동구 명일동 삼익아파트 503동 1302호(TEL:02-3426-1176)
■수상경력
권 옹은 우리나라 교육분야 발전에 진력해 국민복지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1973.8.29)을 수상했으며 1970년에는 일선교육행정의 중책을 창의와 노력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 초등교육 개선에 대한 공로로 문교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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