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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39]조성인 회장을 만나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포천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뭉쳐야 한다


금감원서 검사국장까지… 포천출신 재계인사 ‘유일’


군제대 후 문암리에 재활학교 설립… 자원교사 활동


포천 사람도 ‘형님!’ 소리 좀 하고 살자


은퇴후 포천발전 위해 장학사업 펼칠터


▲조성인 회장.
포천 출신 중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사는 대부분

정계나 학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재계에서,

그것도

금융감독원 국장이라는

최고 자리에까지

오른 인사가

포천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바로 조성인 회장이다.

현재 외국인 투자전문회사인

아시아퍼시픽홀딩사의

한국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 회장은

포천출신 보험업 종사자를

위해 포천보우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고향 포천으로

내려와

후배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의 꿈은

어렸을 때 기억에서

비롯됐다.

군 제대후

포천군 영북면 문암리

산정호수 인근에서

당시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아이들을 위해

친구와 함께

운천재건중학교라는

재활학교를 세우고

자원교사로

활동하면서부터다.

포천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포천을 사랑하는

조 회장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조성인, 그는 누구인가?

포천출신 중 대부분이 정계나 학계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포천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재계에도 포천을 빛낸 훌륭한 인물이 있다.

바로 보험감독원 특별검사국장과 금융감독원 검사국장을 지낸 조성인 現 아시아 퍼시픽 홀딩(Asia Pacific Holdings Co., Ltd.)의 한국 부사장이다.

현재 포천출신 보험업계 간부들의 모임인 포천보우회의 회장이기도 한 조성인 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포천을 떠나 있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 포천에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포천의 기억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역정에 대해 회한의 눈빛을 띠며 이렇게 얘기한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132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뒤로 한채 포천을 떠나온 지 어언 3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조 회장은 군을 제대한 뒤 영북면에서 재활학교를 설립하고 교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그동안 주변을 돌아볼 시간은 물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못가져 봤습니다. 아마도 선배님들은 저보다 더 힘드셨을 겁니다. 그 옛날 어렵고 힘들 땐 왜 그렇게도 주변에 아무도 안보이고 외롭게 느껴졌는지 포천막걸리 소리만 들어도 반갑게 느껴졌었습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포천출신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조 회장.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도중에 ‘포천’ 소리만 들려도 금새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제가 몸담았던 금융감독원에는 1천400여명의 직원 중 포천사람이라고는 입사 때부터 퇴직할 때까지 오직 저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정말 힘들고 외로울 땐 타 지역사람들의 경우 군(郡)이 아닌 같은 도(道) 출신만 돼도 ‘형님! 아우!’하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이 어찌나 부럽던지 포천사람도 형님소리 좀 하고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습니다”

포천을 떠나 서울에 오기 30여년전 조 회장은 포천군 영북면 문암리 산정호수 입구에서 친구와 함께 불우청소년들에게 중학과정을 가르치는 운천재건중학교라는 재활학교를 세웠다.

조 회장은 3년 6개월 정도 자원교사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당시 학생들에게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굳게 약속하고 서울로 발길을 돌린 사이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봉급쟁이 생활을 걷게 됐다고 말한다. 사실 조 회장이 자원교사 생활을 접고 서울로 향하게 된 이유는 남다른 효심때문이었다. 조 회장의 부모님은 당시 아들이 고생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원했던 것.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모를리 없던 조 회장은 부모님에게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정든 아이들을 떠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인생을 논할 나이는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에 가장 송구스러운게 있다면 첫째는 불쌍한 어린 학생들에게 본의건 아니건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못 지키고 나 자신의 길을 갔던 것이 아직도 죄진 것만 같습니다. 둘째는 촌놈이 서울와서 경쟁에 낙오되지 않으려고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뛰다보니 선배님들을 못 찾아뵙고 후배들도 챙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또 내 고향 포천을 지척에 두고 있는 사람이 고향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고향을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은 조 회장은 어느새 당시 고향으로 멀리 떠나버린 표정이었다.


▲고향의 추억

“요즘 같은 장마철이면 연례 행사처럼 홍수가 나서 농작물 피해 등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학교 안가는게 그렇게도 좋아 학교앞 다리가 넘치기를 기다렸던 걸 생각하면 나도 몰래 웃음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포천은 유난히도 마을마다 개울이 많고 가는 곳마다 물이 깨끗해 아무데서나 멱감고, 물고기 잡고, 아줌마들이 옹기종기 앉아 빨래를 했다고 말한다. 이제는 옛 얘기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하는 조 회장.

“또 한가지 생각나는게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겨울이면 어르신들이 즐겁게 노시라고 넓직한 사랑방에 동네 청년들이 돌아가며 나무를 한짐씩 해다가 군불도 때드리고 야식도 해다 드리는 훈훈하고 정겨운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서울에 나와 살다 보니 동네 어른들께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님께도 자식된 도리를 못하고 사는 것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조 회장은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효행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고향 포천에서 태어나 성장했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포천발전에 관해서는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지금까지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복지포천건설을 위한 제언은 이제 포천이 시 승격을 앞둔 이 시점에서 아주 중요한 논의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복지포천건설은 우선 100년 후의 포천을 생각하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조 회장은 모든 복지정책은 결국 현재보다는 미래를, 우리들 세대보다는 후세를 위해서 계획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방선거 실시 이후 나타나는 현상처럼 선거를 의식한 근시안적이고 인기에만 영합하는 깜짝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옛날 우리 선조들의 5~60년 후를 기대하고 우리를 위해 한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었듯이 최소한 100년 후의 포천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에 주어진 환경이나 지정학적 조건을 최대한 이용해 친환경적인 개발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기 드문 산과 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과 풍부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는 포천은 이를 기반으로 한 건강레저산업이나 수도권 근접 위성도시라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십분 활용해 전문교육도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환경친화적이면서 선비의 고장 포천의 전통적 정서를 유지·계승·발전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 회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아무리 훌륭한 복지포천의 청사진이라 해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도로, 교통, 산업용수 등의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복지포천건설은 결국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재삼 강조한다.

“포천의 살림을 맡아 고생하시는 공직자를 포함한 포천을 사랑하는 모든 포천인은 근시안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모양갖추기식의 전시효과적 실적과시 보다는 진정한 복지포천건설을 위한 기반확충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칭)포천전철유치추진위원회 같은 범군민운동기구를 만들어 전 군민이 일치단결해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전개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

“소박한 꿈이 있다면 이제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일하다 은퇴하면 내 고향 포천에 살면서 30여년 전 포천후배 우리 학생들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물론 야학 같은 자활학교는 현 시점에서 필요도 없고 불가능 하겠지만 향후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간다면 가능한 다른 방법으로라도 그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아울러 옛날 우리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추운 겨울 시골 사랑방에 군불 때드리는 마음으로 노인 건강복지 시설 같은 곳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고향 어르신들을 모시고 젊은 친구들 뒷바라지 하며 살기 좋고 아름다운 포천을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포천관련 활동사항

-재경포천군민회 이사

-포천중·고등학교 장학회 이사

-포천보우회 회장

▲주요약력

-포천중·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보험감독원 특별검사국장

-금융감독원 검사국장

-㈜63City 대표이사

-現 Asia Pacific Holdings Co.,Ltd 한국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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