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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 2

이스라엘은 아랍제국이 이기기 힘든 상대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9년 01월 30일


 남충현(사진, 노인명예기자단장)


그러나 불행하게도 BC600년경에 신바빌로니아에게 유다 왕국이 점령된 후 유대인들은 노예가 되어 바빌로니아에 끌려갔다가 다행히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허용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당시에는 로마 제국이 헤롯이라는 괴뢰 왕을 세워서 유대인들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로마가 잠시 소홀한 틈을 보이자 유대인들은 무력으로 저항하였으나 결국 힘의 열세로 실패하여 해외로 추방되어졌다.


이것이 유대인들을 근2000년 동안이나 고국을 등지고 집시 생활을 하게 했던 마지막 비극의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성서의 구약만을 굳게 믿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그들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독특한 생활을 하여왔다. 이러한 힘든 역사를 살았던 유대인들이었기에 다시 나라를 세우게 되자 이들은 정신을 재무장하고 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으려 국방을 강화하고 해외 유대인들은 강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에 자극을 받고 위협을 느낀 10억의 인구를 가진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경계하기 시작하였고 잦은 충돌이 곳곳에서 일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유대인 대 아랍인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중동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제1차 중동전은 1948년5월14일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이 선포된 직후에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주변 이집트, 트란스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에서 출병한 아랍연합군들은 유대인들에게 할당되지 않은 팔레스타인 남부와 동부 지역을 점령한 다음 구 예루살렘시의 작은 유대인 거주 지역을 점령했다. 그러나 신속히 이스라엘군도 반격하여 아랍인연합군을 격퇴하고 1945년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1956년 10월 낫세르는 유럽 소유의 수에즈운하를 점령하고 자국화 했다. 국제 여론이 이집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선제 기습 공격하였고 여세를 몰아 단 5일 만에 가자, 라파아아러시를 탈취하고 수에즈운하 동쪽에 있는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제3차 중동전은 1967년 6월 5일~10일에 있었던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과의 전쟁을 말하며 단 6일 만에 승부가 갈라져 6일 전쟁이라고도 한다.


시리아가 이스라엘 마을 등에 대하여 포격을 하자 이스라엘 공군이 그 보복으로 시리아  미그기 6대를 격추하자 낫세르는 시나이 국경부근에 주둔해 있던 이집트 군대를 동원하여 참전하였다. 전쟁의 결과는 또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이스라엘은 신속하게 제공권을 확보하여 이집트 공군을 궤멸하고 구에루살렘시와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골란고원을 확보하였다.


3차 중동전까지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은 모두 이스라엘의 완벽한 승리였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건너고 시리아 골란고원에서 공격해 들어왔는데 이날은 유대인의 성일인 욤키푸르였다. 대 속죄일이라는 뜻이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는 과거의 패배들을 교훈으로 아랍군은 전보다 더 강력한 공격성과 전투력을 보여주었으며 선제공격의 결과로 이스라엘군은 초기에 많은 사상자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바로 이스라엘의 시리아 침공과 수에즈운하 서안으로의 반격으로 전쟁은 싱겁게 끝나고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휴전에 서면했다.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근 30년 동안 계속되어온 전쟁을 종식시키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고 이 조약의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전체를 반환하고 그 대가로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했다. 양국 간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도 수립됐다.


네 번의 중동전을 통해서 확인된 것은 이스라엘은 아랍제국이 이기기 힘든 상태라는 것이다. 단단히 무장된 정신력은 이미 1970년 제4차 중동전에서 한 일화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었다. 중동전이 일어났을 때이다. 미국이나 영국등지에 많은 대학에서는 아랍계 학생들과 유대인 학생들이 동시에 휴학원을 냈다.


유대인학생들은 조국의 전투에 기꺼이 참여하기 위해서였고 아랍계 학생들은 혹여 고국에서 전투에 참여해달라는 통지서가 올까봐 숨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서방 언론들은 이를 두고 이미 중동전은 끝이 난거라고 이스라엘 쪽에 손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뒤에는 막강한 재력을 가진 그러면서도 조국을 위해서라면 헌신적인 수많은 해외 동포가 있었다. 특히 유대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큰 미국은 항상 이스라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서도 미국은 노골적으로 전쟁의 원인을 하마스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다.


전쟁의 진행사항은 예측 그대로 일방적인 이스라엘의 완전 승리이며 그 결과도 그럴 것이다. 이번 전쟁의 양측 군사력을 보면 왜 하마스가 어려운 전쟁을 비켜나가지 않고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육해공군을 합쳐 18만 명이고, 하마스는 불과 2만명이다. 이스라엘은 탱크 2,400대, 자주포 1,060문, 장갑차 7,000대, 전투기 520대인데 반하여 하마스는 게릴라전에서나 가능한 단거리 로켓 수 천발, 중거리미사일 다수, 대전차미사일 다수라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동등한 전쟁이 되겠는가는 삼척동자에게 물어봐도 금방 답이 나오는 일이다. 가자지구는 성전에서의 죽음을 더 없는 신에 대한 은총으로 생각하는 아랍전사들의 휴전에 대한 고집 때문에 이미 사람이 살수 없는 죽음만이 기다리는 아비규환의 지옥이 된지 오래였다. 막강한 전력을 앞세워 가자지구를 육해공 삼면에서 공격하고 압박하여 이스라엘은 지금 당당히 승리의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양측의 이유는 모두 다 정당하다고 본다. 이스라엘이나 하마스나 서로 생존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전쟁을 선택했던 것이다. 한번 불붙은 전쟁은 끝을 보아야 끝날듯하다. 유엔이 양쪽에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생존의 위협 때문에 한 쪽은 성전 때문에 끝없는 평행선만 달릴 뿐이다.


전쟁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모든 인류가 애써 만들어 놓았던 것들을 파괴해도, 지금처럼 1,100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어도 그 행위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학자들은 전쟁이란 국가와 국가 간 또는 민족 간에 자국의 정책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선택하는 정책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서는 절대 힘의 논리만이 최고의 진리이며 정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전쟁들이 역사를 통해서 반복되어왔고, 그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해온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힘만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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