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익수(사진, 시인)
자연은 인간에게 조건 없는 모방의 빌미를 수없이 제공해 왔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값없는 귀중한 선물이었으며 문명의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금도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도장하나 찍지 않고 무엇이든 손 벌려 무담보 대출로 흥청망청 쓰고 있다. 더구나 모방이다, 표절이다 하여 심지어 자물통까지 부수고 그 차용가치를 강점하는 사회다.
세상일은 곰곰이 따져 보면 공짜가 없는 법이다. 이제는 시치미 뚝 떼고 인간의 편리함만을 위해 독식할 것이 아니다. 이웃집에서 인절미 한 접시 받고 대개 빈 그릇을 돌려주지 않는다. 여기저기 뒤적거려 마땅한 게 없으면 고구마 하나에 감사한 미소 두 마디 정도는 얹어 보낸다. 그것이 사람간에 오가는 정이며 미풍이라 여겼다. 어찌 보면 박절한 것 같지만 아름다운 자존감의 향기다.
이성간의 성적 결합도 이와 닮은꼴로 박자가 맞을 때 서로 재밌다. 어느 날 환한 창문을 내몰고 꿀꺽 침을 삼키면 서서히 전희가 이루어지고 천천히 기교도 필요하며 둥둥 몸을 비틀면 미꾸라지 움켰다 빠져나가는 오르가즘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뜨거운 숨소리가 지나간 운동장에 어질러진 허탈감을 가지런히 줍고 달콤한 잠이 들어야 맛있는 아침이 기다릴 것이다.
살다보면 웃는 날 보다 찌무룩한 날이 더 많기도 하다. 물론 사는 것이 삐걱대고 옹색하여 돌아볼 겨를이 없기도 하지마는 사람이 사람 노릇 하는 꼴을 보지 못해 박수는커녕 시샘과 질투로 길목마다 올무를 놓기가 일쑤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산과 들판을 마음대로 짓대겨 놓고는 제 이름 꾸며 쓴 기념비 세우기에 급급하다. 내용이 부실할수록 겉만 번드레하게 포장하는 것은 헛말이 아닌 줄 이미 아는 바다. 제발 동물농장 프로라도 보며 자신의 속 뚜껑을 열고 독식과 배반이 무엇인가 살펴봐야 한다. 개털이다 하면 참 한심한 노릇이다.
사회는 또 하나 실수를 했다.
자본의 빈곤을 파먹고 사는 거리의 노숙자들을 보라. 그들은 개미가 끌고 가는 빵 부스러기만한 의욕도 없고 담을 그릇조차 없다. 꽃물이 얼룩진 살갗에는 녹이 슬고, 침으로 봉한 편지 한 장 부칠 동전마저 터진 주머니 사이로 도망가 버렸다. 그저 땅을 붙잡고 매달릴 뿐이다. 이것이 지금 구석진 세상의 심각한 현상이다. 열차는 종착역이 종점이지만 사람은 종착역이 시발역이자 또 다른 희망역이 된다.
그래도 광장의 시계는 거꾸로 가지 않는 하늘의 시간표임을 믿어야 한다.
아직 세상 일로 좌절하기엔 너무 이르고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야기를 거슬러 바늘귀를 꿰자면 자연에서 귀띔을 얻은 것에 감사해야 하며 인간은 화해와 소통으로 인본의 숙제를 풀어내야만 한다. 그 다음 상실된 인문의 신화에 양심적인 메스를 들어야 할 일이다. 또 인간예술은 술에 취하지 말일이며 인류문화는 문을 잠그지 말아야 한다.
딱정벌레는 청계산 자락에 그냥 살게 두고, 인간 버러지는 뽑아주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만경뜰 방아깨비도 신이 나고 우리들 물레방아도 다시 착한 땀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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