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 (사진)이상운 노인명예기자 (포천시 신읍동 일신아파트)
악몽의 6.25는 휴전으로 끝이 나고 한강은 자유롭게 왕래를 못하고 미군 헌병대가 도강증을 검사해서 서울에 들어가는 때이다.
1953년에 고생의 시흥국민학교 졸업식을 하게 된 것이다. 시흥국민교는 그때 미군 5,8 탄약부대가 들어있고 우리는 학생을 데리고 산밑에 허무러진 단군전(단군님 모신 곳)에 창문은 가마니를 길게 느리고 시멘트 바닥에는 짚을 깔고 옹기종기 앉아서 공부를 가르치었다.
학생들은 옷도, 양말도 해지고 점심은 굶는 형편이 많았다. 책가방은 탄약통에 책을 넣고 들면 가방이고 놓으면 책상이다. 이렇게 공부를 마친 학생들은 마침 서울의 명문중학교에 모두 합격해서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그 제자들이 2003년에 50주년 기념행사를 하고 60주년 행사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일정에 한 학생의 고희에 참석해 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
이 백발의 제자들은 누가 시켜서 해마다 찾아오겠냐마는 한결같이 찾아주는 백발의 제자들을 공개 칭찬하고 싶다.
제자들이 마련한 2003년 5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필자(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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