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선택’내 좌우명이다. 작게는 아침에 눈을 떠서‘지금 일어날까, 더 잘까’에서 시작해서 크게는‘사법고시를 한 번 더 볼까 떨어지면 그만할까’까지, 순전히 내 선택에 의해서 내 인생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내 좌우명은‘인생은 선택’이다.
내 핸드폰 슬라이드에서 5년 이상을 굳건히 버틴 말이었는데, 시험 3달 전부터는“난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말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선택하는데 주저하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이번 시험을 보고 나서는 불합격 한 후에 내가 과연 다시 공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만큼 힘들었던 시험이라 다시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다짐하며 그 동안 금지옥엽 아끼던 내 책들을 저쪽 한 구석에 먼지 쌓이게 감추어 버렸다.
2차 수험 기간은 크게 예비순환, 1순환, 2순환, 3순환 그리고 마지막 정리기간으로 나뉘는데, 예비순환은 1차 시험을 치르고 그 다음주부터 바로 시작하게 된다. 1차 시험이 끝나고 충분히 놀지를 못했던 터라 예비순환과 1순환 때 공부를 하기 싫었던 나는 공부보다 그동안 못 봤던 밀린 드라마를 보는데 더 열중해 있었다.
11월 중순에 2순환이 시작될 무렵,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의 실력은 나보다 한참, 한참, 한참 앞서 있었고,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3일에 한 번은 불안감에 울면서 잠이 들었다.
원래 눈물이 많은데, 멍석을 깔아주니 어디 한 군데 찌르는 시늉만 해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선배님들이 이 시험은 포기하거나 죽지만 않으면 붙는 시험이라고 종종 말했었는데, 그때는, 죽어서 못 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도대체 1차까지 붙은 사람이 왜 중간에 2차를 포기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엄청난 공부 양에 비해 해 놓은 것은 없고, 시간은 촉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참 무서운 생각이었다.
그때 울면서, 잠 줄여가면서,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다독이면서 공부했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대견하기까지 하다. 역시 사람은 일이 목전에 닥치면 다 한다는 말이 맞다. 어떻게는 해 내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넘어가고, 모두들 새 해가 밝는 것을 기뻐했지만, 나는 가는 2007년을 꼭 붙잡고 싶었다. 무심하게 가 버리는 2007년을 보면서, 2008년은 구차하게 붙잡지 않고 쿨 하게 보내줄 거라는 다짐을 했다. 2월부터 시작되는 3순환 때에는 하루 수면시간을 8~9시간에서 6~ 7시간으로 줄이고 식사시간조차도 그 날 공부한 걸 되짚으며 서로 묻고 대답하고 하면서 보냈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허리가 자주 아파서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1주일에 2번씩 2시간동안 시험을 보니, 오른쪽 팔이 양치질조차 하기 힘들게 아파왔다.
전동칫솔을 마련하고, 살갗이 따갑도록 파스를 붙이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가며 버틴 시간이 3개월이다. 그래서 나는 3개월이면 어떤 것도 바꿀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긴 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는 열심히, 그리고 집중해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밑바탕이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체력이다. 보통, 여자와 남자를 비교했을 때 남자에게 유리한 것은 단연 체력이 좋다는 점이다.
마지막까지 버텨내는 힘은 정말 축복이다. 나는 여자치고는 체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매일 자기 전에 20분씩 하는 요가와, 부모님의 정성이 담겨있는 홍삼과 영양제가 그 이유였다. 공부는 보통 혼자 하는 싸움이라고 하는데, 가족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면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될 수 없다. 난 1:1이 아닌 4:1로 싸웠기 때문에 이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고, 우리 가족은 너무 잘 해냈다. 1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정성껏 달인 홍삼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가져다주시고, 늘상 기마자세가 되는 무릎이 불쑥 튀어나온 추리닝 입지 말라고 사다주시는 신상 추리닝, 방 분위기 화사해지라고 사 오시는 향긋한 꽃 한 다발, 그리고 엄마가 빼 먹지 않고 써 놓으시는 따뜻한 편지 한 장이 나에게는 더할 수 없는 위로이고 힘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힘든 것 없이, 내가 복에 겨워 사는 듯한 마음만 들었다. 또, 1시간은 족히 걸리는 회사에서 먹고 싶은 것 있으면 한 걸음에 달려오고, 생일날은 꽃바구니 배달까지 해 주고, 힘내라는 편지도 보내주는 언니 덕분에 나는 고시 생활이 좋은 것이라는 착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없었다면 절대 견디지 못했을 수험기간이었다. 늘 표현은 하고 있지만,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가족에게 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시험에 붙길 누구보다 바라셨지만, 생전에 보지 못하신 할아버지께는 너무 늦게 합격 소식을 드려 죄송하다는 마음뿐이다.
마지막으로, 같이 공부하면서 동고동락한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우리는 전우애(戰友愛)를 느낀다고 우스갯소리로 말 하지만, 다들 진심인 것 같이 느껴지는 걸 보면, 시험이 내 인생에 큰 전쟁임은 맞는 것 같다.
전쟁 같던 시간을 잘 견디게 해 준 내 자신과, 나에 대한 무한 믿음을 준 우리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남아 있는 연수원 생활에서도 최선을 다 하여 소신 있는 법조인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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