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경( 주부명예기자단 부단장) “쾅 쾅 쾅......”누군가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드립니다. 새벽 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신문 배달을 하고 이제 막 한 숨 자려고 하는데 말이죠. 정말 짜증이 나고 귀찮았습니다. 누워서 눈만 뜬 채 얼른 일어나지 않고‘그냥 가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몇 번을 더 요란하게 현관을 두드리더니 조용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10분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받지 않았죠. 그런데 두 번, 세 번 다시 울리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잠자는 걸 포기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앞에 다방인데요. 할아버지가 사무실에 들렀는데 문이 잠겼다고 전화해달라고 해서 대신 하는 거예요. 사무실 문 좀 열어 주세요.”다방 아가씨가 대신 전화를 걸어 저에게 해주는 말입니다. 저는 마지못해 현관문을 열어놓고 아저씨를 기다리죠. 아저씨는 제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만 원 짜리 한 장을 테이블에 내놓으십니다.
“아저씨, 돈 안 받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아저씨한테 신문 한 부 못 넣어드려요? 제가 그냥 넣어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건데 매번 이렇게 돈을 가져오시면 어떻게 해요?”
“아냐, 사람이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야. 새벽에 고생하는데 신문 돌리는 애들 과자 값이라도 줘야지. 난 신문이 없으면 못 살아. 눈뜨자마자 신문부터 보는 게 일인데 그래도 매일 신문을 챙겨서 보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래도 건강하셔서 안경도 안 쓰시고 신문이라도 보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저씨는 오래 사실 거예요.”저는 뜨거운 차 한 잔을 타서 아저씨께 건네 드리죠. 아저씨는 차를 드시며 어려운 세상사 한풀이 겸 하소연을 저에게 30분은 하십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와 같은 평안도출신 친구로서,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내시고 시집간 딸의 빚 보증을 잘못 서준 죄로 살던 집을 경매로 날리고 무일푼으로 면사무소에서 지원해주는 생활보조금으로 살아가시는 아저씨.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아침부터 저에게 오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죠.
처음엔 돈을 내고 신문 구독을 하다가 형편이 어렵다고 신문을 못 보겠노라 말씀하시는 걸 제가 그냥 넣어드리겠다 대답하고 신문을 넣어드렸는데, 그게 미안한지 매번 이렇게 돈을 가져오십니다. 그것도 매월 20일 생활보조금을 받는 날 제일 먼저 저에게 찾아오시는 겁니다. 지금은 신문대금이 만 오천원으로 올라 만 원을 가져오셔도 신문대금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엇하지만 어쨌든 저는 받지 않으려 하고, 아저씨는 주려고 하는 실랑이가 매월 20일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달 아저씨가 찾아오셔서 저에게 돈을 주시며 하는 말씀이“이젠 다시 못 올 것 같아. 나도 이제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시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아저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건강하신데 자전거 타고 이렇게 잘 다니시면서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저씨는 오래 사실 테니까 걱정 마세요.”하고 대답했었죠.
그 날은 바빠서 차도 한 잔 대접해드리지 못하고 그냥 보내드렸는데 며칠 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데, 그것도 돌아가신지 일주일이 넘었다는데 알고 있어? ”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아저씨가 왜 돌아가셔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다녀가셨는데”“이런 한심하기는”남편의 대답입니다. 저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일이 되기만을 기다렸죠. “20일에는 꼭 오실거야.”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20일이 넘고도 일주일을 더 넘겼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아저씨가 오지 않으니 제 가슴이 왜 이리 허전하고 쓸쓸하고 아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저씨를 볼 때면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생각나 더 잘 해드리고 싶었는데도 아침마다 제 단 잠을 깨우는 게 귀찮아서 내심 짜증스러울 때도 많았지요. 그런데 그렇게 저를 귀찮게 하던 아저씨가 오지 않으니 너무 가슴이 아파옵니다. 2년이 넘도록 매월 20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분이었는데 저에게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온 아저씨는 그렇게 가셨습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정이 무엇인지 그렇게 가르쳐주고 가셨습니다. 이제야 저는 깨닫습니다. 아저씨가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새벽에 일하느라 힘들게 살아가는 저를 보며 아저씨는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아저씨에게 돈 만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사는 도리와 인정과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저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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