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성(내촌감리교회 목사)
우리는 지금의 탑 스타의 자살을 보면서 큰 충격과 한편 자괴감(自塊感)을 갖게 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극단의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많은 선남(善男)들의 선망이 되고 사랑을 받던 스타가 비운(悲運)의 운명을 선택한 것에 대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가진 물질이나 명성 인기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진정한 편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착각이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인기도 쇠락하고 주위는 자기의 이 공허함을 메워 줄 곁에 사람이 없다는 불안이 결국은 우울증(憂鬱症)으로 자신을 옥죄고 여기를 탈출하지 못한 그는 이런 곳으로의 해방은 저편의 세상이라는 생각에 두 자녀를 남긴 채 떠나고 말았다.
우리는 누군가 의기소침(意氣銷沈)해할 때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는 생명을 살리고 재기의 기회가 되게도 한다.
인도의 네루 수상을 ‘곁에 앉았던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힌두교의 고전(古典) ‘우파니시아드’즉 ‘곁에 앉는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힌두교도로서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다. 그는 가난한 동족의 곁에 앉아 희망을 주었고 동서양진영(東西兩陣營)의 곁에 앉아 평화를 모색했다.
세상에는 멀리 앉아 남의 흉을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다. 곁에 앉아 이해하려는 심정으로 남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들어 주는 사람은 적다. 그러한 자세에 너무 익숙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다. 우리는 이번 충격적인 사회현상을 보면서 진정한 옆에 앉져 위로자가 되고 소망의 대화를 진지하게 해보자 이 땅에 진정 위로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살리는 자리 희망의 대화 용기의 말씀으로 격려 하셨고 옆에 계셨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의 곁에 앉았다. 창녀와 병자들의 곁에 앉았다 .심지어 십자가의 운명(殞命)하는 순간까지 사형수(死刑囚)의 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는 성서를 통해 이렇게 약속하신다. 마태복음 28장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 곁에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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