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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면암(勉庵)의 정신을 배우자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10월 10일



우리고장을 흔히 표현할 때 충절과 선비의 고장으로 많이들 표현한다. 이런 역사적 자부심을 뒤로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고 조금이라도 그 의식을 살릴 수 있다면 찾아내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을 해 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지도층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일신의 출세와 안락을 찾아 수없이 변절을 하고 또 이용하고 속이고는 한다. 그렇게 하고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배신과 간교한 행위가 출세하는 지름길이라는 선망에 대상이 되고 이것이 더 확장되면 부정부패로 변하여 더욱 지능화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 같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제는 도의적인 처신의 기준마저도 불분명하여 계층과 지역을 막론하고 윤리와 도덕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저변에까지 만연되어 올바른 윤리의식의 되돌림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 시대 우리는 정신적으로 무엇이 필요한 시기인지 되돌아보는 심정으로 포천출신으로 역사에 길이 그 정신과 업적을 남기신 화서학파의 주류이신 면암 최익현 선생의 모습을 주마간산 격으로 되새겨 본다.

우리 역사상 결기(決起)있는 의로움으로 생을 살다 가신 선인으로 조선말기의 면암(勉庵) 최익현 선생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분은 지부복궐상소(持斧伏闕上疏)라 하여 옆에 도끼를 지니고 궐문 앞에 꿇어 앉아 상소를 올리는 한마디로 상소를 가납하지 않으면 도끼로 죽여 달라는 목숨을 건 의사표시를 몸소 보인 분들이다.

특히 면암 선생은 국운이 기울어 가는 조선의 마지막 역사의 고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끝없는 좌절감을 느꼈던 지조의 선비였다고 할 수 있다. 큰 의리(義理)와 충의(忠義)를 몸소 행동으로 보인 유림의 거벽 고종의 생부요 살아있는 대원군으로 천하의 독선과 위세를 남김없이 휘두르던 대원군에게 맞서 그의 실정을 따져 신료들과 뜻 있는 사림(士林)들에게 참 선비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흥선대원군을 물러나게 한 주인공이 바로 포천의 자랑 면암최익현 선생이시다.

면암 선생은 단발령에 반대하여 󰡐내 목은 잘라도 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상소하여 우리의 의복의 복원을 주장함을 물론 치욕의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1905년에는 정도를 지키고 잘못된 것을 물리치고자 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앞장서 실천하였다. 그 후 칠 십 사세의 노구를 이끌고 호남의 제자들을 찾아가 위기에 처한 종사를 구할 것을 호소하며 팔백여명의 의병군을 모아 스스로 의병대장이 되어 1906년에는 태인 곡성 순창을 중심으로 크게 위세를 떨치나 싸워야할 상대가 조선군 진위대임이 확인하게 되자 조선인끼리 싸울 수는 없다고 하며 어렵게 만들어낸 의병의 해산을 명하고 서울로 압송된다. 그 후 조선통감부는 최익현을 조선 땅에 두고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약식으로 재판하여 대마도(對馬島)로 강제압송(押送)하여 유폐(幽閉)하게 된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대마도에 도착하면서부터 󰡐이미 이 지경에 이르러 너희들의 음식을 먹고 너희들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의(義)가 아니니 지금부터 단식(斷食)하겠다,󰡑라고 하면서 임금의 분발을 촉구하는 직언을 하기에 이른다.

일어나 북두를 우러르고 임금님 계신 곳에 절하고(起瞻北斗拜瓊樓), 흰 머리 오랑캐의 옷자락에 분한 눈물 쏟아져 흐른다네.(白首蠻衫憤涕流), 만 번을 죽는다 해도 부귀를 탐하지 않으리(萬死不貪秦富貴). 평생을 읽은 글이 노나라의 춘추라네(一生長讀魯春秋). 이것이 면암 선생이 남긴 마지막 유시(遺詩)인데 마지막 구절 󰡐평생을 읽은 글이 노나라의 춘추라네󰡑라는 대목에서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조상을 섬기는 존경심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이 끝없는 깊이의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면암의 정신을 그의 고향인 포천에서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청양 정읍 제주도 흑산도 등의 다른 지역에서 더 그 뜻을 기리니 어느 사람은 면암 선생의 고향이 포천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펼 정도로 우리의 무관심이 너무도 안타까울 다름이다.

조속히 그분의 뜻을 기리는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갈수록 세상은 어렵고 힘든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사회의 대부분이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고 돈이 양반이요 부유함이 권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충의와 절개를 지켰던 선비의 고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고장을 이끄는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 일이고 자신의 행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할지를 생각하는 특유의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권력을 쫒고 서로를 헐뜯고 시기하다보면 자칫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역사 속에 변함 없이 흐르고 있는 의로운 정신을 되살려 배우고 실천하자. 자신의 안위를 법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는 실수를 반복하는 누를 더 이상은 범 하지 말자. 포천은 시민만 불쌍한 지역이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자존심 지키는 고장이라는 말을 듣게 만들어 가자. 이제 더 이상 힘을 허비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바른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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