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권력의 주류(노론)를 형성했던 가문으로 대구(달성) 서씨가 있다. 세간에는‘서지약봉(서씨 가운데에는 약봉 서성이 유명하다)’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는데 이는 행정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약봉 서성의 능력을 높이 사는 말이었다. 대구(달성) 서씨는 팔대를 잇달아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여 고위직을 휩쓴 진기록을 갖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결정적 순간에 극단적 변화를 통해 가문을 일으킨 약봉의 어머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전개될 이야기는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가지 설화에서의 공통된 내용과 사실기록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설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약봉(藥峰) 서성의 어머니 이씨부인은 재덕(材德)을 겸비한 어진 부인으로 어려서부터 두 눈을 다 못 보는 맹인(盲人)이었다. 그가 자람에 그의 아버지는 늘 눈먼 딸을 측은이 여기고 어떻게라도 시집을 보내 그로 하여금 인생을 원한이나 없게 하여 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매파를 놓아 딸의 눈먼 것을 속여 혼인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집안이 가난하여 결혼 할 아들이 있지만 마땅한 혼처가 없어 고민을 하고 있는 서씨 가문에 이르러 매파는 마음씨 곱고 인물 좋고 음식 솜씨 좋고 바느질 솜씨가 좋은 참한 규수가 있다고 자랑삼아 떠들었다.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서씨부모는 매파를 붙들고 그렇게 참한 색시가 있으면 중매를 서 주시게 하며 매달렸다. 매파는‘헌데 조금 멀어서’ 라며 말끝을 흐렸다. 신랑의 부모는 멀면 어떤가? 멀어도 좋으니 다리를 놓아주게나. 그러자 매파는‘멀어도 한 참 멀다’고 허풍을 떤다. 그러자 신랑부모는 아무리 멀면 어떤가? 괜찮으니 서둘러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매파는 나중에 딴말하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는다. 그렇게 신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당시는 양가의 신분만 확인하고 사주단자만 오고가면 매파의 말을 믿고 혼사를 치르는 일이 흔히 있었다고 한다. 신랑은 가난한 선비 서해(徐懈)였는데 혼인 날 신부집에서 초례를 치른 다음 첫날밤에 신부를 대하고 보니 백년을 해로할 신부가 눈먼 장님이었다. 너무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신부의 모습은 눈은 멀었을지언정 몹시 어질어 보이고 덕이 있어 보였다. 신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첩이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폐안(廢眼)이 된 몸으로 외람히 낭군을 섬기려고 하였으니 어떠한 미움과 죄라도 감수하겠습니다만 부모님께서 오직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손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옳지 않은 줄 아시면서 속여 혼인을 한 것이니 모든 죄는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저의 부모를 원망치는 말아 주십시오. 다행히 낭군께서 첩의 죄를 용서하시고 비를 들고 뜰을 쓰는 소임이라도 맡겨 주신다면 세 사람을 살리시는 큰 은혜로 여겨 본분을 다하겠노라며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그 태도가 현숙하고 도리에 맞아 신랑은 속으로 크게 감동하여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황망하여 미처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신부는 품속에서 칼을 꺼내 들고 이 몸이 취할 길은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며 자결하려고 했다. 깜짝 놀란 신랑이 이를 막고 위로하며 신부의 치마에 동고동락을 다짐하는 글귀를 쓰며 혼인의 마음을 새기게 된다. 이렇게 혼례를 치른 이씨부인은 효로써 시어머니에게 섬기기를 다하고, 순함으로써 남편을 섬기니, 내외간의 의가 좋아 늘 집안이 화목하고 즐거움이 넘쳤고 살림을 잘 꾸려 사는 것도 점차 나아졌다. 그러나 서른도 되기 전에 아들 하나를 남긴 채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편의 삼년상을 치르고 아들을 데리고 안동을 떠나 서울 약현(藥峴)이라는 동네에서 살게 되는데 이때부터 택호(宅號)를 약봉댁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약봉댁은 묘한 솜씨로 술을 빚고 약과를 만들어 팔아 집안 살림을 해 나가며 아들의 학자금을 대게 된다. 찹쌀에 대추와 밤 거기에 계피를 넣어 밥을 만들었고 또 온갖 약초와 국화를 넣어 빚은 술을 만들었다. 특유의 손 감각으로 정성껏 과자를 만들어 술안주로도 팔았다고 한다. 맛이 너무 좋아 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지경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오늘은 약봉댁에 가서 약봉댁 술에다 약봉댁 과자를 안주로 해서 한잔하고, 약봉댁 밥을 먹으러 가세. 라고 권하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음식값이 꽤나 비싸서 보통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주로 부자나 양반들이 먹을 수 있어서 약봉댁을 다녀 간 사람들은 크게 자랑을 하였고 세간에서는 약봉댁에서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약주(藥酒), 약과(藥果)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비롯한 것으로, 약현(藥峴)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하는데 술을 높여서 부를 때 약주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명품음식으로 신뢰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성 선생의 호(號)를 약봉이라 칭하게 된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이씨 부인은 이렇게 약식, 약과, 약주를 만들어 번 돈으로 약현(지금의 서울 중림동)에 대지 오천평 규모의 큰집을 지어 학문을 가르치는 거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후 약봉의 어머니는 자식교육에도 새로운 결단을 하여 오랜 인연을 맺어온 퇴계 학맥과 결별하고 떠오르는 율곡 학맥에게 자식들의 교육을 맡기게 하여 후손의 학문의 혁명적인 번성을 이루게 된다. 조선조에 약봉 가문의 자손은 문과 합격자 105명에 이르며 상신(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9명, 대제학 6명, 당상관 28명, 정2품 이상 관리 34명, 종2품 1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내리 6대에 걸쳐 최고의 후손을 배출하게 된다. 이처럼 약봉의 집안의 번성하기까지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애마저도 떨쳐버린 지혜롭고 현명하신 어머니의 커다란 힘이 숨어 있었다. 약봉 서성 가의 묘소는 포천시 설운동에 있는데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로 당선된 포천시장도 달성 서씨이고 최근에 포천에는 한과가 유명한데 아마도 약봉가의 길한 기운이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러 기운을 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약봉가의 후손이 시정을 수행하게 되었으니 우리고장 포천이 번성하는 기회가 되기를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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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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