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생태도시의 조건 13]생태도시의 조건

공명수 교수 (대진대학교 영문학과)

람사협약과 논습지의 현명한 이용에 대한 사유
앞서 언급했듯이, 습지는 희귀 동식물의 서식처와 산란처로서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로 생물종이 매우 풍부한 생태계이다. 이는 습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생명부양의 생태계이며,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자연자원이라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들 개개인이 습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은 생태학적 자각을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하겠다.
먼저, 우리는 이러한 생태학적 자각과 실천을 단지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지 않고 더욱 구체화된 의식의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습지의 기본 텍스트로 통하고 있는 람사협약(Ramsar Convention)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람사협약은 자연자원과 서식지의 보전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약으로서 습지자원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람사협약은 1971년 2월 2일 이란의 해안도시인 람사(Ramsar)에서 채택되어 1975년 12월에 발효되었다. 한국은 1997년 7월 28일에 101번째로 이 협약에 가입을 했고,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이 첫 번째로 등록되었고, 창녕의 우포늪이 두 번째로 등재되었다. 람사협약이 발효된 이후로 2007년까지 154개국이 람사협약에 가입하였으며, 약 1,650개 습지가 람사습지로 동록되어 있다.
람사협약의 습지 선정기준과 평가방법을 보면, 우선 습지의 생태적 기능이 우수한지 여부를 주요 기준으로 삼고서 그 가치를 평가한 후 등급화 하여 보전과 복원정책에 활용한다. 습지가 가지는 기능이나 가치가 높은 지역을 판별하는 기준으로는 생물학적, 지리학적으로 대표성이 있고, 희소하거나 생존력이 약하여 멸종 위험이 있는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습지, 또한 2만 마리 이상의 물새가 정기적으로 서식하는 습지 등이 해당된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첫째 범주에는 생물학적이고 지리학적인 특이한 특성을 갖춘 자연적 또는 인공적 생태의 대표적인 습지, 주요 하천 또는 연안유역으로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자연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는 습지, 특히 국경 부근에 위치한 습지가 해당된다. 둘째 범주에는 희소 또는 생존력이 약하여 멸종 위험이 있는 동식물종 또는 이종 집단으로 서식하거나 이들 종의 개체수가 상당수 서식하고 있는 습지가 포함된다. 셋째 범주에는 습지의 가치 생산성과 다양성을 나타내는 특정 물새의 종 또는 이종의 전지구적 서식지의 1% 이상이 정기적으로 서식 또는 번식하는 습지가 속한다.
그런데, 람사협약이 추구하는 기본방향은 습지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습지를 보호하는 것  그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이 협약의 주요 목적이 습지의 자연적 특성이 유지되는 틀 속에서 인간의 혜택을 위해 지속 가능한 활동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에서 람사협약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생활공간 속의 습지에 대한 "현명한 이용(wise use)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습지의 "현명한 이용"은 생태계의 자연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인류에게 편익을 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활용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습지는 단순히 그 자체의 생물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그치지 않고, 자연생태계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사회, 경제, 문화 영역으로 그 가치를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람사협약이 추구하는 이 같은 "현명한 이용"의 기본 방향을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람사협약에 등재된 대암산 용늪이와 창녕의 우포늪을 포함하여 전지구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주 큰 단위의 갯벌, 호수, 철새에만 관심을 표해 왔다. 이렇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논이 습지라는 인식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지자체,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그것의 현명한 이용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2005년 캄팔라에서 열린 제9회 람사총회에 미야기현의 카부우리 늪과 그 주변 논을 람사협약에 신청을 하였고, 그곳이 아무런 이견 없이 등재되었다. 이는 인간의 농업 생산활동의 중심 무대인 논습지가 람사협약에 등록된 세계최초의 사례로서 환경의 지속 가능한 활용에 기본적인 방향점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생명연합회가 2006년 홍성의 유기논에서 논생물 조사를 실시한 바가 있다. 이 조사를 통해 조합원들과 농민들이 논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을 발견함과 동시에, 논습지가 습지 생태계로서 뛰어난 환경보전의 기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리나 우렁이 등을 활용하는 기존의 유기농법 이외에도 조합원들과 농민들은 논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종들의 생태를 연구하여 논습지의 근원적 생명력을 활용하는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아울러, 습지로서의 논생물 조사활동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공간이 생태계와 유기적인 깊은 공존관계를 맺고 있음을 체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논습지는 토지자원 관리에 생태학적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 경관생태학(landdscape ecology)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어 습지의‘현명한 이용’차원에서 보면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좁은 국토면적과 자연자원의 집약적 관리가 상대적으로 긴요하게 요구되는 우리나라에서 논습지의 현명한 활용은 생태학적 가치에 중요한 대안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분절된 논두렁으로 이루어져 있는 논습지에 살충제 살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유기농법으로 오리와 우렁이를 포함하여 벼와 토란과 연 등 다양한 습성 생물종을 재배한다면, 논습지의 생태계와 샛강과 주변의 생활공간이 연출하는 경관생태학은 생태도시가 추구하는 "현명한 이용"의 바람직한 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