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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생태도시의 조건 9]물의 생태학에 담긴 풍요와 충족의 의미

물의 생태학에 담긴 풍요와 충족의 의미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7월 21일



공명수 교수(대진대학교 영문학과)

 

인류의 역사는 물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물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유랑과 정착의 과정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강은 어느 국가에서나 지역에서든 저마다 풍요와 융성의 기세를 안고 있다. 씨족이 물과 함께 형성되고, 그 씨족이 성장하여 부족이 되고, 그 부족이 더 발전하여 마을과 도시가 되었고, 마침내는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듯이, 강은 제각기 굽이굽이 흐르는 궤적 속에 인고의 역사적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은 여러 제식(祭式)을 통해, 혹은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 강은 문명의 부침(浮沈)을 지켜 본 목격자이자 태고의 비전(秘傳)을 보호하고 있는 옛 이야기를 전해 주는 기억의 저장고인 셈이다.
고대인들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따뜻한 지역보다 물이 풍부한 곳을 더 선호했다. 이들은 땅이 척박하면 열심히 땀을 흘려 그것을 일구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한 기후의 조건이 열악하면 이에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낼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물만큼은 결코 부족해서는 안 될 절대적 조건 그 이상으로 상상하였다. 언제나 이들은 자신들의 수가 불어나면 물이 보다 더 풍부한 곳을 찾아 자신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이들은 물을 다스리는 방법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논밭에 물을 대고, 수로를 건설하고, 강줄기를 원하는 곳으로 바꾸는 기술을 터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관개시설을 통해 자신들의 척박한 정착지를 비옥한 농경지로 바꾸어 풍요로운 수확물을 거두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미, 4천 년 전에 아시리아 유목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척박한 지역을 서구문명의 요람이 된 비옥한 삼각지로 바꾸었는가 하면, 이들은 그 다음에 홍수로 넘쳐흐르는 물을 보존하기 위해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기도 하였다.
사실, 나일강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의 사고의 자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에게는 현실적인 보고이자 정신적 실존의 근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일강은 그 인근 유역에 거주하고 있는 2천만 이집트인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는 젖줄이자, 특히 헬레니즘 문명기의 그리스인들, 그리고 로마인들이 매우 신성시하던 역사적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집트들은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 그것이 강의 ‘부활’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더욱 성스럽게 생각했다. 나일강의 범람은 강물이 봄철에 주변 땅으로 흘러들어 땅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비옥하게 해주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들은 나일강의 범람을 신이 주는 선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강의 범람을 ‘영혼의 정화’라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이집트인들은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진상물은 강물에 빠진 자신의 몸이라고 여겼다. 이집트인들에게 “물에 빠진다”는 뜻의 말은 “찬미한다”라는 뜻으로 통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물 속에서 신과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집트인들은 나일강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이런 노래를 바치기도 했다: “그대는 태양신인 ‘라’가 창조한 들녘에 물을 흐르게 하는 풍요로운 존재, 그대는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모든 동물들에게 생명을 주고, 모든 대지에 계속 마실 생명수를 주는구나.”  이집트인들에게는 나일강은 대단한 경외와 존엄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강을 깨끗이 보존했으며, 감사의 뜻으로 제물까지 갖다 바치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강가에 성소(聖所)를 세우기도 하였고, 또한 곳곳에 신전과 사원들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또한, 강에는 그곳을 따라 여행하는 여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신화가 숨쉬고 있다. 대개 여신들은 어떤 연유로 상실했던 누군가를 찾아,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렸던 자신의 일부를 되찾기 위해 강의 흐름 속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강의 여행은 여신들에게는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한 탐색의 노정인 셈이었다.
가령, 에로스를 찾아 떠나는 여신인 프시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불복종에 대한 벌로 프시케는 자신의 애인인 에로스를 잃는다. 그녀가 에로스를 되찾기 위해서는 에로스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가 부과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한다. 프시케는 제우스 소유의 독수리로부터 도움을 받아 생명수를 아프로디테에게 바친다. 그런데, 아프로디테는 프시케에게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느 강가에 풀을 뜯고 있는 황금털의 양떼를 찾아 그 털을 뽑아 오라는 과제를 또 다시 부여한다. 결국 프시케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 강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데, 그 때 그녀를 가엾게 여긴 어느 노래하는 갈대가 프시케에게 황금털을 얻는 비결을 가르쳐준다. 갈대의 도움으로 프시케는 그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다. 프시케에게 그 갈대는 절대절명의 운명의 존재인 셈이다. 강에서의 프시케의 외로운 탐색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 비추어 보면 바로 잃어버린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을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정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프시케의 여정에는 완벽과 조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개개인의 탐색 여행의 우화가 담겨 있다.
이제, 우리는 강이 주는 풍요와 충족의 의미를 우리의 소중한 삶이 묻어 있는 샛강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마을의 앞뒤로 흐르는 작은 샛강의 자취와, 그것의 복원에 관심을 두면서 큰 강의 궤적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작은 지류 속에 흐르는 샛강의 흔적과 가치를 사유해야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물은 이 세상의 빈 공간을 채워주며, 늘 그곳에서 떠나지 않고 머문다.” 우리의 삶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끝내려 해도 끝낼 수 없고, 채우려 해도 언제나 비워 있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들을 우리 마을의 샛강에서 노래해야 한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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