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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할머니 생신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6월 20일

"은혜야! 일어나라 서둘러야 한다." 엄마의 성화에 투덜투덜 짜증내며 일어났다.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오늘이 87번째 맞이하는 할머니 생신이기 때문에 졸리운 눈을 비벼서 일어나야만 했다.
"은혜야, 할미다." 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 했기에. 안아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다정하신 생전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돌아가신지가 벌써 2주년을 맞이한다. 밤에 화장실 가시다가 넘어져서 뇌출혈이 시작되어 40일을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가셔서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셨다.
6월 14일 토요일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 집을 향했다. 화창한 날씨가 더없이 감사했다. mp3 이어폰 한쪽 줄이 끊어져서 이어폰 먼저 사고 가면 안되느냐는 질문에 엄마가 단호하게 거절하셨지만 그래도 이어폰과 할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엄마가 케이크를 사신다고 하시기에 치즈케이크를 부탁드렸지만, 손에 들고 오신 것은 모카케이크였다. 납골당 가는 동안 치즈가 녹아 내린다고 하시며 내게 미안해 하셨다.
녹색 산림을 헤치며 한적하고 시원한 도로를 달렸다. 녹슬은 청평철교와 청평댐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에서는 낚시하는 태공들이 꽤나 많이 눈에 띄었다.
아빠께서는 철교와 댐이 일본이 우리 백성을 강제 동원하여 이루어졌다고 하시면서 일제시대의 만행은 치가 떨려 용서가 안되지만 그들의 기술은 대단하다고 하셨다.
댐은 청평 자연 휴양림 입구에서 문중 납골당으로 갈라졌다. 입구에는 예전에 없었던 철대문이 생기고 무거운 자물쇠가 채워진 것으로 보아 산림훼손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문중 관리 아저씨께 전화하시는 동안 심심한걸 견디지 못한 나는 순식간에 담을 넘어 버리고 우리가족은 박장대소를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구슬땀을 흘리며 올랐다.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도 했다. 아빠가 납골당의 문을 여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내려놓으시는 동안 나는 한바퀴 둘러보았다.
봄에 왔을 때보다 사망하신 분들의 사진이 더 많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크를 자르고 편지를 드렸다. 찬송가도 부르고 성경책을 읽고 기도문으로 끝냈다.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4살 때 큰집에서 제사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집어먹다가 흘렸는데, 사촌오빠와 언니가 할머니께 일렀더니 ?괜찮다~ 그냥 놔둬라~? 하시며 내 편을 들어 주셨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집안 막내로 태어난 나를 각별하게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지만 그리움뿐이다.
살아 계실 때에 잘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고 선물이라 생각해 본다. 할머니께 많은 이야기들을 해드리고 "다음에 또 올게요." 하고 약속을 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엄마가 쓰신 짤막한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어머니! 오늘 87번째 생신을 아시는지요. 빈자리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찡하고 멍해지는데 눈물이 핑 도네요. ?에미야.....미역국 좀 많이 줘....? 국 종류와 국물을 즐겨 드시던 어머니. 꿈속에 몇 번이고 홀연히 오셔서 바라만 보고 계시는데 한 말씀만 하셔도 반가울 텐데 왜 그냥 조용히 바라만 보고 계시는지요? 5남매 걱정 뚝 끊으시고 평안히 계세요. 모두 열심히 부지런히 잘 하고 있습니다. 문득 문득 생각날 때마다 대답 없는 어머니를 불러도 보았지만......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 알고 계시지요. 어머니....... 오늘 저희 3식구 다녀갑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어머니 사랑해요. 2008년 6월 14일】
돌아가신 후에도 사랑 받는 우리 할머니는 역시 최고의 할머니이신 것 같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는 까맣게 익은 버찌를 비롯해서 보리수, 앵두, 오디 등이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가을이면 호도, 밤, 잣 등이 우리를 환영해준다. 할머니는 돌아가셔서도 우리 후손들을 많이 사랑해 주시는 것 같다. 할머니 사랑해요.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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