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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제로 생경하게 느끼고 체험하는 생동적인 삶을 모두가 갈망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가? 우리의 생활세계가 문명의 도구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삶의 본질적인 가치인 자연적 본성과 자연 자체를 상실하고 문명세계에 식민화 되고 있지 아니 한가? 자연이라는 원초적인 대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부하면서 인위적인 문명도구에 물들어 가고 있지 않는가? 사실, 생명체의 터전인 대지는 불모의 황무지로 변한 지 오래이다. 우리의 삶의 공간은 생태주의적 토대의 일부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힘이 인위적으로 자행되는 엔트로피적 공간으로 이미 변질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문명의 도구들이 생명의 원천이자 양식인 자연을 황폐화 시켜 모든 생명체의 존속을 위협하면서 우리의 삶의 공간을 사멸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자연 개발과 지배의 작업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발성에 비유하고 있다. ?현대의 기술은 자연 지배적 도발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도발성은 자연에 내재해 있는 본원적인 에너지를 채굴하고 개발하며, 또한 그것을 축적하여 재분배하고 이를 재활용하는 경로를 밟는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발은 이렇게 하여 더욱 강화되고 공고해 진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현대문명 비판의 핵심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위적인 산물로부터의 단절을 촉구하는 경고와 함께 자연적 본성의 복원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자연적인 삶의 본질을 망각하고 껍데기에 불과한 외양에 너무 집착할 때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엔트로피화는 더욱 가속화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적인 본성을 잃고 인위적인 태도에 젖어들수록 거기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의 고향을 잃기 마련이다. 자연적인 본성인 삶의 깊이의 뿌리가 없는 곳에서는 튀는 삶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선언?은 문명세계가 만들어 낸 전지구적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전세계인이 한마음이 되어 생태계를 살리기로 동의한 지구 최초의 실천적 행동강령이라는 점에서 ?리우선언?은 지구촌 곳곳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환경보존 선언인 셈이다. 리우선언의 전제 조건이자 중심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내포된 개념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행동강령에는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인 기본 틀을 깨트리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인간중심이 아닌 자연중심주의적 입장에서의 개발이 전제로 깔려 있다. 그런데, ?리우선언?의 중심 개념인 ?지속 가능한 개발?은 기본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이루면서 환경보전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러한 ?리우선언?이 추구하고 있는 지구환경을 살리려는 행동강령은 영구적인 확실한 지구보존의 대안은 못 된다. 현대도시의 모체인 산업사회를 떠나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는 심층생태학자들의 입장에 따르면, 오늘날의 위기의 치료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문명이 기술적으로 생산해 내는 부산물로부터 벗어나 원초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입장에서 자연적인 본성과 자연 자체의 복원을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연은 일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면서 인간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인간과 인간이 다시 합일하는 정신적인 힘을 솟구치게 한다.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 주는 삶의 근원적인 원형이다. 자연도 인간과 꼭 같이 살고자 하는 숭엄한 의지를 가진,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을 동등한 동반자로 인정할 때 리우선언이 지향하는 이 지구상에서의 지속 가능한 삶의 영위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러한 자연적 본성의 회복은 마음의 생태학이 작용할 때 가능해 진다. 마음의 힘은 직관적인 형태로 작용하고 또 그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어찌할 수 없는 도덕의 힘으로 또는 사물의 넓은 질서에 대한 외경심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구성원들의 마음 전체를 움직이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마음의 힘은 그것의 자양분으로 고요와 고독을 필요로 한다. 마음의 움직임은 고요와 고독의 존귀함을 새롭게 각성하고 이를 익혀 나갈 때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고요와 고독은 근원에 대한 명상에 젖어들 때 근원적인 힘을 발휘하고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고요와 고독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연적인 본성과 원형을 탄력적으로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자연이 지닌 외경심에 둔감하고 고요와 고독을 알지 못하고 개발 이데올로기와 담론에 빠져 단기적인 성과주의나 속도주의를 맹신하는 자들에게는 마음의 치료가 더욱 긴요하다고 하겠다. 공리주의의 부산물인 현대도시의 삭막한 콘크리트 건축물과 거리의 기능주의를 생태주의가 지향하는 낭만적인 인간주의로 바꿀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은 고요와 고독에 근거하는 마음의 생태학뿐이다. 우리의 마음이 깊은 곳으로부터 움직일 때 도시행정가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 포천의 도시계획은 최소한도 인간의 주거지를 생존의 조건이 아닌 생태주의적 조건에 맞추어 설계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데,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동요할 때 도시 행정가들도 그 굳은 마음의 힘에 답할 것으로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