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념(理念)"이 어떻고 "인격(人格)"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이념이란 "생각"이다. "사상(思想)"이다. 이념의 뿌리는 생각이다. 생각이 굳어지면 이념이 되는 것이고 이념이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면 사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풍토(風土)에서 나오는 것이고 환경(環境)에서 나오는 것이다. 풍토와 환경이 그 사람의 생각을 지배(支配)한다는 말이다. 환경과 풍토가 그 사람의 생각을 그렇게 하도록 섭리(攝理)한다는 말이다.
언뜻 보기에 "이념"과 "사상"은 같은 것이라 생각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이 굳어지면 이념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사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념이 사상이 되려면 적어도 그 이념이 한 시대를 "풍미"해야 한다. 어떤 이념이 한 시대를 풍미해야 비로소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말이다. 이즘(ism)으로 불리게 된다는 말이다. 공산주의(communism)나 민주주의(democratism)는 "사상"으로 부르나 단군 할아버지의 가르침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사상"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이념(理念)이지 사상(思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념과 사상은 그 지향(指向)하는 바가 다르다. 이념이 교화(teaching)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사상은 통제(control and dominate)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념은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이나 사상은 상호배타적(相互排他的)이다. 이념은 공존(共存)할 수 있으나 사상은 공존할 수 없다.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생각을 용납(容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주장만을 고집(固執)하기 때문이다.
사상의 늪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사상에 눈이 멀어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사상의 늪에서 헤어나야 한다. 사상의 청맹과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상에 눈이 멀면 부모도 안 보이고 형제도 안 보인다. 사상이 귀를 막으면 어떠한 충언(忠言)도 들리지 않고 어떠한 경구(警句)도 들어오지 않는다. 사상의 포로(捕虜)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고 사상의 천라지망(天羅地網)에서 탈피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념(理念)과 사상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인격(人格)은 그렇지 않다. 인격은 수양(修養)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맘을 갈고 닦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몸과 맘을 닦는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할수록 인격은 도야(陶冶)되는 것이고 그 정신은 고매(高邁)해지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자신을 단련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양을 한다는 것은 "닦는다"는 것이다. 몸과 맘을 닦는다는 것이다. 몸과 맘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몸과 맘에 때가 끼지 않도록 매일 매일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명(命)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인격(人格)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격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다. 성품(性稟)을 말하는 것이고 품격(品格)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품으로 말하고 품격으로 말한다. 성품을 말하는 이유이고 품격을 따지는 이유이다.
인격은 신뢰(信賴)를 낳고 믿음을 준다. 진실성(眞實性)이 있고 일관성(一貫性)이 있고 예측가능(豫測可能)하기 때문이다. 인격은 모든 것을 포용(包容)한다. 편가르지 않는다.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대한다. 세상의 이치를 따르고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는 이유이고 인격도야(人格陶冶)를 말하는 이유이다. 전통적으로 풍류(風流)와 품격(品格)을 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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