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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권의 언어 산책] 어느 언어학자의 고백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08월 23일
 
ⓒ 포천신문  
지난 6월 어느 날, 전자우편을 열어보니, 정년 축하 모임에 초대한다는 글이 와 있었다. 정년을 맞이하시는 분은 내가 학문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분이기에 비록 학원 근무 시간이고, 먼 거리였지만, 그 자리에 참석했다. 나의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의 주제는 다름 아닌 이 분의 저서를 읽다가 생긴 궁금증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국립국어원장으로 계셨던 이 분은 마침 나의 박사학위논문 심사 때 심사위원장을 맡아 주셨던 분이다. 부족한 나를 초대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나는 학원근무를 포기하면서까지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오늘의 언어 산책로에서는 이 분과의 일들과 지난 정년 축하자리에서의 일을 말하고자 한다.

이 언어학자의 학문적 업적은 뒤로하고, 나는 대학 시절에 걸쳐 이 언어학자를 먼발치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는 바로 한글학회라는 곳이었다. 그때는 대학시절의 전공교재의 저자라는 점에서 약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석사시절 때, 이 언어학자는 당시 대학의 교수님으로 계셨는데, 그때 대학원에서는 학위논문에 대한 발표회라는 자리가 있었다. 선배들의 학위논문에 대한 발표가 끝나고, 그 발표에 대한 일종의 평가시간이 있었는데, 짧은 학문적 수준에서 그 평가의 내용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이 언어학자의 평가는 졸고 있던 나를 깨워버렸다. 졸고 있던 나를 깨워버린 것은 이 학자의 평가내용이 아니라 바로 자세였던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은 발표한 학위논문이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 학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표지를 들고, 정말 정중하게 발표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교실에서, 선생님 질문에 대해 앉아서 대답하던 장면만을 보아 왔던 나에게, 이 장면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박사괴정 때, 이 학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초긴장의 강의였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 학자의 철저한 강의진행 때문이었다. 일례로 강의 때, 발표의 내용에 대해 정말 하나하나 다듬어주고, 평가해 주었다. 발표지에 날짜를 써 가지 않았었는데, 이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날짜가 표시되지 않은 글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나는 이후로 모든 내가 쓴 글에는 날짜를 표시하게 되었다. 바로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이 학자는 발표의 평가에 대해 항상 앞에서는 의의와 잘 된 점을 지적해 주고, 그 다음 ‘다만’이라는 접속어를 시작으로 고쳐야 할 부분들을 지적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실은 뒤의 고쳐야 할 부분들이 문제점인데도 불구하고, 앞부분의 의의와 가치를 먼저 듣게 되어 항상 힘이 솟곤 했다. 이외에도 발표지의 시각적 효과 등을 세세히 지적해 주면서, 편집 요령까지 깨우쳐 주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박사학위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이 언어학자가 나의 심사위원장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영광을 느꼈다. 박사학위 논문 심사 때도 나의 신선한 충격은 계속되었다. 역시 뭐가 달라도 달랐던 것이다. 학위논문을 심사할 때, 다른 분들은 나의 논문에다가 표시하여 말씀하시는데, 이 학자만큼은 심사요지를 직접 작성해서 하나하나 지적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학위논문 초심 때, 학위논문으로서의 여부를 판단하는데, 세세한 나의 학위논문 평가 뒤에, “이 논문은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선언한 이 학자의 목소리를. 그리고 이 언어학자는 강의시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외국은 학자와 교육자가 구분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학자가 교육자의 일을 병행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학자가 모범이 되어야 하고, 아울러 연구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학자의 길이 곧 교육자의 길임을 명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6월 정년을 맞이하시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언어학자의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의 평가는 하나로 귀결되었다.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이 평가에 대해 나는 정말 공감했다. 특히 이 언어학자는 시간에 대해 엄격했다. 나는 역시 기억한다. 강의시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느 모임이든, 제시간에 모이면, 90%이상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제시간에 모이지 못하면, 그 모임이 무엇을 하든 90%이상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나 역시 이후로 시간관념에 대해 철저하게 지키리라 마음먹었었다. 이러한 모임 끝 부분에, 이 언어학자의 말씀이 있었다. 여러 좋은 말씀이 있었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대목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였다. 과연 이 언어학자의 자기 평가는 어떠할까? 겸손의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나는 또다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 평가는 바로 ‘완벽했다’라는 것이었다. 완벽! 이 세상 어느 누가 자신을 돌이켜 봄에 ‘완벽’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그 이유로 이 언어학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일을 추진할 수 있어서였다라고 말했다. 불현듯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한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리라!’ 그야말로 감동의 느낌이 내 머리카락을 쭈뼛 세우고 말았다. 박사과정 때, 한번은 이 언어학자께 전자우편으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내용은 학문이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때, 이 언어학자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새것을 찾는 것입니다. 단 그 새것이 나만의 새것이 아닌 모두가 인정하는 새것이어야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바로 ‘溫故知新’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돌이켜 보먼, 이 언어학자의 말씀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명언이었다. 어느 날 학부 때 스승께서, 나에 대한 평가를 이 언어학자가 다음과 같이 했다는 말을 해 주셨다. “정상적인 학생입니다.” 이후로 나는 대학 강의 첫 시간 때면, 항상 칠판에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쓰게 되었다. ‘정상(正常)이 정상(頂上)이다.’

앞으로 먼 훗날, 나도 나 자신을 평가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과연 나도 내가 완벽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 언어학자께 정년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완벽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또한 우리 모두 우리의 언어 산책로 역시 완벽하게 가꾸기를 기원해 본다.

*덧붙임1: 객관화하기 위하여 정년을 맞이하신 선생님을 ‘이 언어학자’라고 칭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임2: 지난 언어 산책에서 "그러나 ‘경제성’이란 좋은 표현일 뿐,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게으름을 싫어하는 데서 발생하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에서 ‘게으름’을 ‘귀찮음’으로 수정합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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