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俗談)이 있다. 이 속담은 두 가지 의미(意味)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소문이 아주 빠르게 퍼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 빨라서 도저히 되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예전에도 소문은 빠르게 펴졌고 일단 소문이 나면 쓸어 담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중구연금(衆口鍊金)이란 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중구연금’은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단련시킨다는 말이다.‘여러 사람의 입’이란 시쳇말로 여론(輿論)을 말하는 것이다.
여론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한번 각인된 여론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번져나가기 때문이다. 그 뿌리는 잡초(雜草)와 같아 어쩌지 못한다. 돌아서면 자라나는 것이 잡초이기 때문이다. 무성하기 전에 뽑아주는 수밖에 없다. 아니 그 뿌리가 되는 원인(原因)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원인’을 제공하고 나면 그 어떠한 방법도 여론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하는 속담을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이다.
여론은 또한 형체(形體)가 없다. 금력이나 권력도 그것을 부슬 방법이 없다. 아무도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이 없다. 독재사회나 민주사회를 막론하고 여론이 강할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여론에‘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여론의 지지(支持)가 필요한 사람은 이 같은 사실을 반듯이 명심(銘心)해야 한다. 예전 사람들은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말했다. 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하늘의 뜻을 무시하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여론은 민초(民草)들의 소리이다. 백성(百姓)들의 소리이다. 민초란 을목(乙木)을 말하는 것이다.‘을목’이란 큰 나무 밑에 자라는 잡초(雜草)를 말하는 것이다. 잡초는 바람의 향방(向方)을 먼저 안다. 바람이 일기 전에 고개를 숙이고 바람이 멈추기 전에 고개를 든다. 태풍이 불 때 갑목(甲木)인 큰 나무는 부러지나 잡초는 고개를 숙일 뿐 부러지지 않는다. 잡초가 살아가는 방법(方法)이다. 잡초가 살아남는 지혜(智慧)이다. 민초들도 마찬가지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바람의 향방을 알고 여론의 향방을 안다.‘여론’이 곧 그들의 마음이요, 바람이기 때문이다.
민초란 대중(大衆)을 말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이를 매쓰(mass)라 한다. 매쓰란 불특정(不特定) 다수(多數)이고 이질적(異質的)이고 익명적(匿名的 )이고 유동적(流動的)이며 일방적으로 정보(情報)에 노출(露出)되는 사람이고 선택적(選擇的) 성향(性向)을 지니고 있으며 의견지도자(意見指導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는 필자의 얘기가 아니라 매스컴 이론서(理論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특정 다수란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은 군중(群衆)을 말하는 것이고 이질적이란 계층(階層)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며 익명적이란 서로 신분(身分)을 모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유동적이란 대중의 마음이 수시로 바뀌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일방적이란 그들의 의사(意思)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받기만 함을 말하는 것이며 선택적 경향이란 일방적으로 정보에 노출되지만 그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은 자기 주변에 있는 의견지도자를 따르는 경향(傾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지망(志望)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대중의 속성(屬性)을 잘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여론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여론의 실체(實體)와 속성(屬性)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여론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조작(造作)될 수 있는 것이다. 매니플레이트(manipulate)할 수 있는 것이다. 조작한다는 말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여론조사란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여론조사는 설문을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의도한 대로 조작할 수 있다. 이것이 여론조사가 지니고 있는 함정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러한 사실(事實)을 잘 알고 판단(判斷)을 잘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