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10-19 오후 07:17:3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르포/기행

[자유기고] 친정아버지

강기숙(주부명예기자단 영북면지부장)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9월 21일

오늘은 친정아버님의 추도일이다. 아침부터 고향에서 살고있는 언니의 목소리가 전화벨을 울렸다.

“못오지?”당연스레 알면서도 집을 나서면서 전화했나 보다. 마음이야 당장 친정집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내 처지를 어찌하랴!


내가 중학교 2학년때 돌아 가셨으니....내 나이가 오십이 됐으니 벌써 몇 십년의 세월인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데 큰오빠 친구였던 담임선생님께서 전해준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십리 길을 단숨에 달려갔었다.


세분의 고모님이 계셨으나 아들은 혼자였던 아버지는 팔 남매를 두셨고 팔 남매 중 4명의 오빠들을 모두 대학교를 보냈으며 밑으로 딸 3명과 막내아들도 모두 대학을 보내라는 유언을 남기실 정도로 교육열도 대단하셨다.


일찌기 초대 면의원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했고 돌아가실 때까지도 지역 학교 육성회장을 하면서 학교 일에도 열심이셨다. 그래서 장례를 학교장으로 치뤘다.


어린 나이때 난 속으로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감사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내 주변 친구 아버지들은 작은 마누라를 얻어 살림하면서 자식들을 났었고 친구들이 불편해 한 것을 보면서 소위 바깥 출입을 하셨던 아버지는 너무나 깨끗한 도덕관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로 단 한번도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신 적이 없었다.


엄격한 성품이면서도 또한 끔찍히 사랑해 주시기도 했다. 속정이 깊으셔서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으나 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고 공부를 잘 했다고 등을 토닥거려 주실 때도 많았다.


제주도에 출장 다녀오면서 사오셨던 빨간 운동화-그런데 그 속에서 나왔던 풍선 한 개-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생일날이 되면  그 자식은 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내 생일날!  아버지와 겸상해서 밥을 먹는데 생선가시를 다 발라서 밥숟가락 위에 올려주셨다.


그때 어린 생각으로 "난 커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과 결혼할거야" 라고 맘먹기도 했었다.


훗날 내가 결혼해서 아이들과 밥상에 앉았는데 내 남편은 그리하지 않는걸 보고(아버지를 생각하며) 남편한테 잔소리했던 게 기억난다.


오늘밤에도 우리 가족들은 음식들을 나눠 먹으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겠지! 연로하신 친정 엄마도 남편이 아련히 그리워지실꺼야.....오늘밤엔.........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9월 21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이름 비밀번호
개일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겨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