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오월은 많은 사람들에게 엷은 희망의 빛을 주고 간 달이다. 사방곳곳을 둘러봐도 미풍에 너울대는 푸른 잎들이 삶에 찌들은 가슴을 조금은 틔여 주고 곱게 핀 넝쿨장미의 꽃잎들은 정겹게 손잡아주는 친근한 내 이웃 같다.
신도시 건설로 한 동네 정겹게 살던 이웃들이 같은 지역 내에 있지만 이곳저곳으로 헤어져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 수년이 지나면서 거의 잊어버릴 정도였는데 몇 일전 전화 한통화로 마음이 무겁다.
살던 집을 보상받아 자식들에게 분배하고 두 노인네 겨우 작은 아파트에 몸담고 사시는데 자녀는 여럿 있어도 다 저 살기 급급하니 어느 자식이 부모님 생활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 아픈 다리를 이끌고 하우스 채소밭에서 일품을 받아 겨우 사신다고 했다.
일하고 돌아오면 식사 후 씻고 누우면 꼼짝할 수 없어 농협에서 고객 사은 경품잔치에 딱 한 장을 넣었기에 되려니 생각 않고 참석을 못했는데 이웃 젊은 댁이 할머니 경품에서 백만원 짜리 당선되어 부르던데 왜 안오셨어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나 생각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전화했다며 "혹시 그거 반이라도 찾을 수 없을까?" 전화 너머 목소리는 거의 반울음소리였다. 그 뜨거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3만원의 일당 때문에 그런 행운도 놓쳤으니 그 심정이 오죽 하실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니 다른 방법으로 조금은 도와 드릴 테니 기다려 보시라고 전화를 끊고 남 돕는 일 좋아하는 사람을 졸라 쌀과 현금을 조금 준비했다. 일시적인 작은 위안은 되시겠지만 막막하게 살아가야 할 날들이 까마득할 것 같다.
될 수 없는 일을 자식은 부모에게 강요하다시피 떼쓰기 때문에 노후에 나를 위해 조금이라고 준비한 것도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내놓기 마련이지만 생계가 막막해도 부모는 어려운 자식에게 손 내밀 수 없는 그런 상황은 너무도 뻔한 사실이다.
늙은 부모가 어디가 불편한지 생각하기보다는 제 새끼 남과 같이 못해 주는게 더 급한 것이 요즘 젊은 세대다. 하찮은 조류 까마귀는 제 어미 죽을 때까지 옆을 지키며 보살핀다고 한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해준 부모님을 조금은 보살피는 마음에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달픈 아주머니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