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163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에게는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구처럼,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는 단순히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길이 될 흔적이었습니다. 절망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내가 끝내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애썼던 이유는, 나의 발걸음이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은 화려한 이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다만, 누군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길을 잃었을 때, 내가 남긴 '희망'이라는 정갈한 발자국을 보고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죽음은 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내가 간직했던 희망의 불씨를 세상이라는 문장 속에 영원히 심어두는 일입니다. 육신은 사라져도 내가 꾹꾹 눌러 딛고 간 희망의 궤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눈 덮인 들판 위로 묵묵히 길을 내며 걸어갔던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눈동자에 희망의 빛을 담았던 사람. 나는 죽어서도 누군가의 추운 마음을 데워줄 따스한 불씨이자, 길잡이가 되는 이정표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을사년의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세상과 한발더 멀어져갑니다. 그럼에도 밝아오는 병오년 새해에 희망을 품습니다.

< 김남영 / 동두천시 노인대학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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