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단어는 따뜻함을 인식하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어렵고 위엄있게만 느낄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나는 자라면서 친정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했다.
내가 자라던 옛날에 아들이 우선인 그 시대에 우리는 딸만 셋이었다. 친정아버지는 혈통을 이어 갈 아들을 낳겠다고 다른 살림으로 두 집 살림을 하시다가 얼마의 시간이 흘러가자 아예 짐을 챙겨 가지고 처자식을 버린 채 그 여자가 사는 집으로 가벼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서도 아버지없는 자식들로 남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어머니는 과부 아닌 과부가 되어 어린 딸들 셋을 키우려니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 딸들은 각기 다 성장해서 배우자들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그들의 지식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고 있노라면 그 동안 고생했던 지겨운 젊은 시절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았다고 행각 하실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젊음을 잃어버린 지금, 온 몸이 성한데 없이 다 망가져 버리고, 그 예쁘고 곱던 얼굴에는 인생계급장인 주름만이 가득 자리하고있는 내 옆에 살아 계시는 내 어머니의 모습은 가엾고 측은 하기만하다. 아니, 지금 내 옆에 살아 계신 것에 감사한다.
아버지가 안계신 터라 사랑이 그렇게 따듯한 것인가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서기 1991년 가을 단군 할아버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날. 나는 비로소 내 세상인 내 가정 보금자리를 창조했다. 그 날이 바로 10월3일 개천절이면서 우리 결혼 기념일인 것이다.
내 시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이백원짜리 새우깡과 이백오십원짜리 병콜라는 이때부터 받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회사로 출근하고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나는 구석구석 집안 청소를 하고, 세탁을해서 빨래 줄에 가지런히 널어 놓은 뒤 진한 원두향을 담은 커피 한 잔을 마신뒤 카펫위에 있는 베개를 배고 내 몸을 뉘었다. 낮잠 한 숨으로 피곤해진 몸을 잠시라도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얘! 아가 집에 있니?" 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가 보았다. 시아버지께서 한손에는 작은 봉다리를 들고 계신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어머, 아버님 어쩐 일이세요? 들어오세요." "그래, 차 한잔 주렴"하시는 것이다.
향긋한 냄새가 피어나는 쑥차 두 잔을 타가지고 아버님과 마주 앉았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곳에 와서 사랑스런 자부에게 좋은 차 대접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 드리고 이 가정 자녀들에게 건강과 많은 축복 주실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간곡히 기도 드립니다."라고 기도를 해주시는 것이었다. 잠시후, 검은 작은 봉다리에서 새우강과 콜라를 꺼내시면서 "얘야 혼자 있으려면 심심할테니 이것을 먹으면서 성경책이라도 읽어보렴"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필요로 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미 신앙인이었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다뜻한 작은 사랑에 감복해서 인지 새우깡이 너무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두 번재 새우강과 콜라를 받은 것은 삼일째 되는 날에 그 다음은 이틀 뒤에 새우강과 콜라를 사가지고 오셔서 "얘야 네가 타준 숙차 맛이 생각이 나서 또 왔단다."그러시는 것이다.
꼭 내가 좀 쉬려고 할때마다 오시니깐 아니 이제는 매일 오시니깐 이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그 시간에 누워 쉬고 싶어도 나만의 자유시간에 얽매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은근히 짜증도 났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의 부드럽던 대화는 나도 무른 사이 퉁명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시아버지께서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이 "얘야, 내가 너를 고연시리 귀찮게 하는 것 같구나"하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사실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 것 이다. 나의 한마디 때꾸도 없는 모습에 시아버지는 얼마나 서운 했을까! 그 후, 한동안(4일) 오시지 않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얘야! 나다!"하시는 시아버지의 목소리에 반가웠다. "얘야 우리 오늘 점심은 외식하자. 오징어 볶음덮밥 어떠니?"하시는 것이다. 그래도 정식코스는 아니더라도 작은 레스토랑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양식 스테이크는 아니더라도, 삼셥살이나 돼지갈비 정도는 아닐까 생각하는데 내 생각과 달리 너무 작은 아니 소박한 식사로 외식하자는 시아버지가 의아스러웠다.
그런 나를 무산케 해버린 시아버지의 깊은 뜻은 따로 있었다.
작은 분식집에 앉아 오징어 덮밥 2인분을 시키신 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이제 시작인데 무슨 돈이 있겠니 커피는 내가 사마."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가계부를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커피 값보다 오징어 덮밥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후식으로 커피를 사신다던 시아버지는 오정다방 앞을 그냥 지나치시는 것이다. "아버님 커피는요?" "응, 내가 살 거야"조금 더 걸었다. 농협 앞 자판기 앞에서 발을 멈추더니 200원짜리 커피를 뽑으시면서 "길 다방 커피 맛도 괜찮단다."하시면서 농협 앞 대리석 위에 앉으시는 것이다. "얘 아가 다방커피는 너무 비싸지." 빙그레 웃으신다. 요즘 몇 일 새우깡을 못 먹었더니 시아버지 발자국 소리가 기다려진다고 서슴없이 시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무거웠던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 다음 날에 예전과 변함없이 시아버지 손에는 새우깡과 콜라가 들려 있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외식도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아닌 친구처럼 내 마음은 편안하게 해주신 시아버지를 뵙지 못한지도 십오년 이라는 세월이 흘러 버린 지금 세상에서 아니, 내 생애에 있어 새우깡과 콜라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고 사랑이 듬뿍들인 소중한 선물을 받았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영원히 새우깡과 콜라는 받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