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19-04-24 오후 09:17:5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자유기고

[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38선은 누가 언제 그었는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21일
 
ⓒ 포천신문  
남북 분단을 가볍게 생각한 주역은 미국과 러시아(소련)이다. 미국의 합동 참모회의 작전국 ‘조지링컨’소장의 주도로 1945년 8월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을 결정했다. 39도선과 38도선을 놓고 논의하다 예일대학교 지리학과 니콜라스 스파이그만 교수의 저서를 근거로 38도선을 선택하였다. 소련은 미국의 분할 점령안을 그대로 승인했다.(에드워드 로니의 운명의 일도(一度)참조)

이 학자들은 일본과 소련의 영토 분할의 중간 지점이 바로 38도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조선반도’와 그 부속 도서가 조선땅 즉 ‘한국 땅’이란 사실을 모르고 일시적 군사 행동으로 만주의 관동군(왜놈군구 군대)은 소련군이 38선 이남은 미군이 점령하고 일본군에게 항복받아 무장해제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독일의 소련 침략을 1000만명이나 희생시키면서까지 방어한 소련의 막강한 군대는 미국이 이렇게도 걱정하던 만주땅의 일본 관동군을 대나무 자르듯 파죽지세로 전멸시키고 38도선 이북과 만주 땅을 점령하였다. 한참 뒤 미국군은 38도선이남 한반도를 점령해 일본군을 무장해제하였다.

‘꿩의 병아리’ 같은 왜놈들은 조선군 사령부(용산)에 예쁘고 잘생긴 왜녀 45명을 자진 응모 형식으로 모집했고 당시 미국군 고급장교 숙소로 사용하던 조선 호텔방마다 한명씩 투입했다. 미국군의 한반도 점령시 일본인들에게 유리하게끔 미인계를 써 가며 호감을 샀다. 당시, 점령군 사령관은 하지 중장이었으며 부사령관은 아놀트 소장이었고 군정장관은 럿치 소장이었는데 전투밖에 모르는 쑥맥 군인이었다. 각 시군에 군정관(위군)이 행정을 하고 안재홍 박사가 한국인 장관으로 럿치 소장을 도와 군정 3년을 행하였다. 당시만 해도 38도선 남북을 자유왕래하고 우편물도 오가고 물물 무역도 하였다.

미소공동위원회를 덕수궁에서 몇 차례 개최하고 ‘통일조선’을 의논하였으나 헛수고였다.

‘중국에서 귀국한 사람들은 모두 장군이고 미국에서 귀국한 사람들은 모두 박사라고 하며 귀국 동포들을 비웃었다(단결이 안되는 분열을…).’

북에서는 38경비대를 조직, 38선을 경비하고 북조선의 독립을 준비하였다. UN에서 한국위원단을 안보라를 통해 파견하고 통일 한국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자 하였으나 UN선거 감사위원단의 38도서 월북을 막아 남한만의 단독 정부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일어난다’고 말했다.

미 태평양 방어선에서 조선반도를 제외하자 북의 소련국적의 현역 소련군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중국 8로군(한국인 무정사령관)으로 참전, 소련군 고문단의 후원으로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명령으로 4시에 남침이 시작됐다. 38선은 무너지고 동족삼잔의 비극은 시작되고 분단의 아픔은 시작됐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21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경기도가 김포시, 파주시, 연천군,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등 접경지역 ..
생활상식
o 척추관 협착증 -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허리 통증 봄기운이 완연한 요즘입니다. ..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2,224       오늘 방문자 수 : 1,367
총 방문자 수 : 28,119,808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도 포천시 해룡로 130-38(동교동 213-4) 고은빌딩
발행인·편집인 : 황정민 / mail: pcn90@unitel.co.kr / Tel: 031-542-1506~7 / Fax : 031-541-911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다50007 / 등록일 : 2000년 8월 18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정민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