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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최호열] 체육계 성폭력, 구조적 혁신이 필요하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17일
 
ⓒ 포천신문  
새해 벽두부터 체육계에 성폭력 사태가 잇따라 폭로되며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미투운동이 체육계로도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얼마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자신을 포함한 4명의 선수를 상습 상해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심석희 선수는 “지도자가 상하관계에 따른 위력을 이용해 폭행·협박을 가하면서 만 17세인 2014년 이후 4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미성년자인 고교 2학년 때부터 2018평창동계올림픽 직전까지 상습적인 폭행이 이어졌다니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현직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현직 지도자·빙상인으로 구성된 ‘젊은빙상인연대’ 등 12개 체육·시민단체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빙상계에 심석희 외 성폭력 피해자가 5~6명 더 있고 이 중 2명은 피해자를 통해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확인했다”고 폭로했다.

심석희는 올림픽 금메달 2개를 포함해 국제대회에서 수십개의 메달을 목에 건 우리나라 빙상의 간판스타다. 이런 선수도 속수무책으로 당해 온 것을 보면 무명 선수들에게까지 마수가 뻗쳤을 것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빙상계의 성폭행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도계에서도 지도자에 의한 제자 성폭행 사건이 폭로됐다. 전 유도선수 신유용은 개인 SNS를 통해 고교 재학 시절 지도자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 피해를 봤다고 밝히고 해당 코치를 고소했다. 이미 지난해 3월 코치를 고소했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해 외롭게 버텨왔는데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고백에 용기를 내게 됐고, 후배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실명까지 공개한다고 했다. 또한, 대한태권도협회의 전 임원이 과거 제자 수십 명을 성추행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어린 선수들을 보호해야 할 지도자가 오히려 선수들을 구타하고 상습적인 성폭력까지 행사했다는 사실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자 문체부는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강화, 영구제명 조치 대상이 되는 성폭력 범위를 종전보다 확대하기로 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대처로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체육계의 병폐를 사그라뜨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체육계는 지도자가 선수를 발탁해 키우는 도제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고, 각 종목마다 엄격한 위계와 학연·지연 등이 촘촘히 얽힌 폐쇄성을 갖고 있다. 이런 틀 안에서 성적지상주의와 코치라는 절대 권한, 폭행과 같은 범죄에 대한 비정상적인 암묵 등은 성적 약자인 여자 선수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총체적 책임을 지고 체육계 시스템 전반을 혁신해야 하며 범죄에 대한 더욱 강력한 처벌이 수반돼야 한다. 지난 2017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래리 나사르 사건을 보자. 래리 나사르는 미국 올림픽 체조대표팀 주치의로 있으면서 30년 동안 300명이 넘는 여자 선수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는 2018년 1월 재판에서 175년형을 선고받았고 2월 판결에선 최대 125년 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사실상 종신형이다. 또한 미국체조협회에도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물리는 바람에 협회가 파산에 이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미 의회에서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신고 의무제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사건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강제력을 갖춘 신고 의무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체육단체의 규모가 작고 폐쇄적이어서 피해 선수들이 신고를 해도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 문제를 다룰 독립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폭행과 성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와 관계 당국은 이런 국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잘못된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한 법·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미성년자 때부터 인권을 유린당하고 가족들에게까지 숨긴 채 외로움과 상처들을 참아 온 여자 선수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두 번 다시 이런 가혹한 불행이 재발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기를 촉구한다. 끝으로 끔찍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딛고 외쳐낸 어린 여자선수들의 용기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최호열 / (사)한국상록회 부총재, 포천신문사 명예회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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