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17-08-17 오전 08:34:3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칼럼위원기고

[김중위 칼럼] 세월호와 타이타닉호


포천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06월 14일
 
ⓒ 포천신문 
여객선 “세월호”가 일으킨 참사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참담함과 슬픈 가슴으로 우리의 현실을 한탄할 뿐이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글이 써 지지 않는다. 며칠을 참고 있다가 그래도 나름대로의 할 말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타이타닉”을 마음속으로 떠 올려본다. “죽지마 로즈 ! 죽지마!”라고 외치는 사랑하는 애인의 목소리 때문에 칠흑처럼 어둡고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던 것인가! 이제는 할머니가 된 한 노인이 그 옛날을 회상하는 모습이 그리도 애잔하게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너무도 낭만적인 영화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로 보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어떤 사고든지 재난이 있으려면 언제나 그만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면서 직조처럼 짜여져 일어나는 사고가 바로 재난이 아닐까 싶어서다. 타이타닉호가 바로 그랬다.

타이타닉호는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호화로운 여객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대 침몰할 수 없는(unsinkable)" 해상최대의 선박으로 생각했다. 그런 배도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침몰했다. 타이타닉호는 북대서양 횡단여객선으로 만들어졌다. 3년여의 기간에 걸친 조선(造船)과정을 거쳐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이라는 자그마한 항구(지금은 3대거항으로 커졋지만)에서 뉴욕을 향해 출발하였다. 처녀출항이다. 승객은 2224명.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민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의 불타는 욕망에 타이타닉호도 덩달아 흥분한 탓인지 쾌속으로 달렸다. 북대서양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빙산뿐! 빙산에 주의하라는 몇 차례에 걸친 무선통신도 못 들은 척 아랑곳 하지 않았다. 빙산쯤이야 밀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소리도 없이 달리는 맛으로 배는 멈칫하는 기색도 없이 달리다가 그만 거대한 빙산에 부딪쳤다. 주갑판이 함몰하는 사고가 난 것이다. 그 시각은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그 시각에 선장과 승무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선장은 지상최대의 호화여객선의 선장이 되었다는 기분에서였는지 빙산을 조심하라는 무선도 무시한 채 여전히 쾌속으로 배를 몰았다. 전방을 감시하고 있어야 할 항해사는 망원경도 없이 망루에 로봇처럼 서 있었다. 빙산과 일직선으로 만났을 때에는 직선거리가 불과 몇 백 미터! 제동을 걸어보았자 이미 때는 늦었다. 우현에 난 구멍으로부터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배가 갈아 앉는다는 소식과 함께 바다에 뛰어 들었다. 그들은 모두 북대서양의 얼음장 같은 차가운 바다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는 사이 타이타닉호에서는 근처에 지나는 배들을 향해 구제요청 신호탄을 수도 없이 하늘을 향해 쏘아댔다. 그러나 불과 20km밖을 지나고 있던 화물선 칼리포니아호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불꽃이 구조용인 빨간색이 아니라 흰 불꽃이었기 때문이었다. 호화여객선의 불꽃놀이쯤으로 여기고 지나쳐 버리고 간 것이다. 이제는 자구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명조끼도 구명보트도 승선인원 2224명을 위해서는 태부족이었다. 절반정도 밖에는 준비된 것이 없었다. 배는 점점 바다 속을 향해 기우려져 가고 사람들은 이에 맞춰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우성치면서 서로가 서로를 밀치고 제치면서 자기 먼저 구명조끼를 입으려고 멱살잡이로 삶을 서둘렀다. 또 서로가 먼저 구명보트에 올라타려고 갑판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선장과 선원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여인들과 아이들을 먼저 태우라는 명령으로 승객들을 다스렸다. 이에 항의하는 승객들에게는 권총으로 위협하면서까지 거칠게 다루었다. 배안의 연회장에서는 여전히 쉬지 않고 아까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바다는 잔인했다. 빙산과 부딪친 지 3시간이 지난 15일 새벽 2시 20분에 절대로 침몰할 수 없을 것이라던 타이타닉을 집어 삼켰다. 15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사망하고 생존인원은 불과 700여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참혹한 재난 속에서도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장면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장과 승무원들의 자세였다. 생존인원의 대부분은 부녀자와 어린 사람들이었고 선장과 선원들과 연회장의 연주자들은 거의 모두 살아나오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신들이 타야할 보트의 자리와 구명조끼는 모두 승객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들은 죽음의 바다로 스스로 몸을 묻었다는 얘기다. 그들은 자신 한사람의 희생이 바로 승객 한사람을 살릴 수 있는 몫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서 “세월호”참사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자신의 몫으로 입고 있어도 좋을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는 물속에 갈아앉은 여직원 한사람 빼고는 선장이나 선원누구도 승객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선장이라는 사람은 승객인양 남의 눈을 속이면서 홀로 탈출하고 나서 배가 갈아 앉을 때까지 근 한 시간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피신해 있으면서 젖은 돈 5만원 짜리를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라는 사람은 배가 갈아 앉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국인답게 행동하자(Be British)”라고 말하면서 선원들을 독려하였다고 한다. “영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하기에 그들은 “영국인답게 행동하자”는 말로 스스로를 다짐 할 정도였을까? 영국인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남극 탐험에 나선 스코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탐험에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영국인답게 행동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지금도 존경받고 있다. 탐험에 성공한 아문젠은 썰매를 끄는 개도 서슴없이 잡아먹으면서 탐험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스코트는 썰매를 끄는 조랑말이 지쳐 쓰러지면 “영국인 답게”안락사를 시켰을뿐 잡아먹지는 않았다. 결국 조랑말은 그렇게 다 죽고 썰매를 자기 스스로 끌고 가야하는 사태 속에서 그는 죽어갔다. “영국인 답게”말이다. 스코트와 함께 남극탐험에 참여했던 오츠라는 사나이는 자신의 부상이 동료에게 부담이 되자 “잠깐만 나갔다 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텐트 밖 눈보라 속으로 나가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 또한 “영국인 다운” 행동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러운 마음으로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어느 자리 어느 기회에 “한국인답게 행동하자”고 외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자화상에 눈물도 사치스럽다고 느껴진다.

농암 김중위 / 전 사상계편집장, 환경부 장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06월 14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경기도민은 경기도내 통근 시 승용차를 주로 이용하며 (거주지: 38.4%, 도..
생활상식
▶ 재해발생 개요 태풍을 제대로 맞은 공사 현장의 상황은 이랬다. 약 40m에 달하는 ..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7,512       오늘 방문자 수 : 26,850
총 방문자 수 : 8,969,233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청군로 3326번길 28(구읍리 505-1) 민헌빌딩.
발행인·편집인 : 이중희 / mail: pcn90@unitel.co.kr / Tel: 031-542-1506~7 / Fax : 031-541-911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다50007 / 등록일 : 2000년 8월 18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중희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