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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희=칼럼] 47년 전의 역사(歷史)에서 오늘을 배우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9월 15일
 
< 이중희 / 포천신문사 고문 >
 
여당에서 이진숙 의원을 제명시키려 하는데도 대통령에게 <이진숙의원을 제명시키면 않된다>는 직언(直言)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을 보면서 역사에서 가르침을 얻으려 이 글을 써본다. 대통령을 재림 예수라 하는 사람은 있었다. 아첨을 크게 경계했던 정조(正祖) 임금 시대라면 삭탈관직(削奪官職)에 귀양, 아니 참수형일지도 모른다.

1979년 10월 4일 국회의사당에는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야당 신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에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 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여당 의원들은 오후 4시 정각 국회 1층 146호실로 속속 모여 들었다. 날치기 통과를 위해 선택된 장소였다.

건강한 사복 경찰 100여 명이 회의장 주변을 에워쌌다. 오후 4시 경 백두진 국회의장은 "국회법 158조 규정에 의해 김영삼의원 징계동의안을 상정한다."고 선포했다. 투표시간 10분 뒤 백 의장은 "재석의원 159명 가운데 가(可)159표로 가결되었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신민당 의원들이 이 사실을 알고 달려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헌정사상 처음인 '국회의원 제명(除名) 1호' 사건이다.

김영삼 총재는 제명 결정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외쳤다. "공화당 정권은 오늘 국회를 권력의 시녀로 타락시켜 야당 총재를 의회로 부터 추방하는 폭력 정치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목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 길을 선택했다." 라는 한국 정치사에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신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고별사에서도. "이 순간 내가 죽은 것이 아니다. 1969년 12월 20일 밤 김형욱이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 나를 초산으로 암살하려 했다"면서 "민주화 투쟁을 향한 나의 의지와 생각을 이 정권이 빼앗을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5세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어 7선으로 최다선 야당 총재이며 의회주의 신봉자였던 김영삼 총재를 쫓아낸 국회와 그 발단은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이었다. 김영삼 총재는 같은 해 9월 16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미국 카터 정부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지지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으로 부터 점차 소외돼가는 현 정권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절대 다수 중에서 명백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미국이 현 정권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한국정부에 민주화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카터는 한국에 와서 박 대통령의 위신을 높여줌으로서 반대 세력을 억압할 수 있는 용기를 그에게 주었다."고 비판했다.

유신독재 치하에선 용납될 수 없는 발언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바른 말을 계속하는 김영삼 총재를 구속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명분이 뚜렸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속할 경우 오히려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시련을 꿋꿋이 이겨낸 김영삼은 14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이진숙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 시키려고 한다. 이진숙 의원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 주려고 한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누가 옳은지는 국민은 다 알고 있다. 김영삼 총재가 국회에서 쫓겨난 지 22일 후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만찬에서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고 비명에 죽어야 했다.

그 때도 박 대통령에게 <김영삼 총재를 제명 시키면 안 됩니다>라는 직언(直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도 <이진숙 의원을 제명 시키면 안됩니다>라는 직언이 없다. 직언을 못하고 안한다는 것은 대통령과 나라를 위하는 충성과 용기가 없고 자신만의 안위만 생각하기 때문 인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애국심, 능력, 도덕성, 실력있는 인재는 많고 많은 것이다. 그들은 구차하게 아첨을 못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장기 집권을 시도한 유신정권의 역사는 이렇게 끝났다. 이번에는 역사가 어떻게 흐를지 궁금하다. 바른 직언이 싫어지면 정권의 말기 현상 임을 모든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47년 전의 역사에서 오늘을 배우자.

< 이중희 / 포천신문사 고문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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