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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권의 언어 산책] 내 인생을 바꾼 `멋있다`


포천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09월 21일
 
ⓒ 포천신문 
나는 중학교 1학년 국어 수업 시간 때 과제를 받았는데,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외워 오라는 것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로 시작되는 첫 부분을 외우는 순간, 나의 가슴 속에는 젊고 순수했던 청년시인의 영혼이 느껴지는 듯했고, 이윽고 삶의 목표를 '시인'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인의 꿈을 안고 살던 나는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면, 도서관 창가에 떠오르는 달빛을 바라보며 시를 쓰면서 문학도로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아울러 대학 역시 시를 쓰기 위해 국문학과에 들어갔다. 신입생 시절, 나는 문학 동아리를 주도하며, 달빛과 소주를 벗 삼 아 문학도의 길에 푹 빠져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어학 개론'이라는 전공 수업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다. 음운변동이라는 아주 재미없는 부분이었는데, 문득 과제를 하던 도중, '멋있다'라는 낱말의 발음이 [머싣따]인지 [머딛따]인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기숙사에 있던 나는 친구들에게 이것을 발음해 보라고 했지만, 다들 [머싣따]라고 읽으며, 이게 뭐가 중요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머릿속은 미칠 것 같은 호기심으로 꿈틀거렸다. 다음 국어학 개론 강의가 다가오기까지 나는 미친 사람처럼 [머싣따]가 맞는지 [머딛따]가 맞는지를 물어 보며 다녔다.

드디어 다음 국어학 개론 강의가 시작될 때, 나는 간절한 구원을 바라는 병자처럼, 교수님께 [머싣따]가 맞는지 [머딛따]가 맞는지를 여쭤 보았다. 이 세상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이 문제에 나는 사활을 건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아니 사실 나는 이 문제에 사활을 건 것이 사실이다. 근데 교수님의 대답은 사활을 걸고 있던 나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교수님의 대답은 '둘 다 맞다'였다. 그 이유를 여쭤보니, 돌아 온 대답은 참고서적 한 권뿐이었다.

지금도 생생한 그 참고 서적은 허웅 선생의 '국어 음운학'이었다. 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그 책을 찾아 정말 연애편지 읽듯이 그 문제에 관련된 부분을 찾으며 읽었다. 결국 찾아 낸 답은 다음과 같았다. '멋있다''의 발음은 [머딛따]가 맞다. 그런데 [머싣따]도 ‘허용한다’이다. 그럼 왜 [머딛따]가 맞는가? 그 이유는 '음절의 끝소리 규칙'때문이다. 이것은 받침소리로 /ㄱ, ㄴ, ㄷ, ㄹ, ㅁ, ㅂ, ㅇ/만이 허용된다는 규칙이다. 즉 '멋'의 받침 /ㅅ/은 [먿]으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ㅅ/은 받침소리로 발음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있다'처럼 'ㅇ'으로 시작하는 말이 오면, 앞의 받침소리가 이어져서 [디]가 되고, /있/역시 받침으로는 /ㅆ/이 발음되지 않고, [ㄷ]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딛따]가 되는 것이다. [따]가 되는 이유는 앞의 받침소리가 [ㄷ]이기 때문에 뒤에 오는 소리가 된소리로 된 것이다.

[머딛따]가 맞다는 것은 '멋없다'를 발음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누구도 '멋없다'를 [머덥따]로 소리 내지 [머섭따]로 소리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맛있다/맛없다'도 같은 성격의 문제이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는 [머싣따]는 그럼 뭔가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바로 '멋이'를 그대로 이어 발음하는 [머시]에 '있다'가 이어져 발음된 것이다. 다시 말해 '멋이 있다'를 발음한 경우를 전제한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멋있다'의 발음은 [머딛따]가 맞고, [머싣따]를 허용하는 것이다.

언어 산책을 하던 중에 대학시절 문득 궁금했던 문제가 생각나 이렇게 장황하게 떠들게 되었다. 윤동주의 서시를 외우며, 문학도의 꿈을 꾸던 한 남자에게 왜 갑자기 '멋있다'의 발음이 궁금했을까? 그러나 한 쌍의 남녀가 운명적으로 만나듯 이 운명적인 의문은 한 남자의 인생을 바꾸고 말았다. 문학도를 꿈꾸던 나는 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다. 실로 단어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은 셈이라 하겠다.

또 나에겐 어떤 운명의 의문이 들까? 그것이 궁금해지는 가을이다.

즘게 김유권 / 국어학 박사
포천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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