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부사의=이규임] 3무(無) 교육 시스템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지난달 18일 오전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의 ‘42 볼프스부르크’ 캠퍼스 랩에 한국 대학생 5명이 수십 명 관중 앞에 섰다. 4개월간 만든 모형 자율주행차를 시연(試演)하는 자리였다. 한 학생이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조작(操作)하자 차량은 장애물을 피해 달리고 주차까지 완벽히 해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독일에서 자동차에 특화된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배웠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국민대, 비영리 코딩학교 ‘42 볼프스부르크’와 함께 만든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교재·교수·강의가 없다. 무슨 말이냐? 스스로 문제를 풀고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곳에선 1년 내내 기업·대학·비영리학교가 뭉쳐 ‘자동차 SW 기술자’를 키운다. 2022년 4명을 선발해 보냈고, 작년 파견한 2기 10명이 지난달 1년 과정을 끝냈다. 2025년까지 매년 10명씩 파견할 예정이다. 학생들의 독일 체재비는 모두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댄다.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이 한국 대기업과 독일 회사에 취업하면서 “견학하고 싶다”는 교육 기관들이 늘고 있다. 

교육계에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IT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사회의 다양한 분야가 서로 협력하는 모델”이라고 격찬한다. 학생들의 발표를 참관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올리버 하트콥씨는 “1년 만에 이런 프로젝트 성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교육을 맡은 ‘42′는 2013년 프랑스 이동통신 회사 프리모바일의 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비를 기부해 만든 무료 코딩학교다. 

가르치는 사람은 없지만 조언자(助言者)는 있다. 독일 현지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연구자 20여 명이 ‘펠로’로 참여해 커리큘럼을 같이 짜고 학생들이 필요할 때 조언해 준다. 이들 덕분에 산업 현장의 기술 변화를 그대로 학생들이 배운다. 예컨대,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소프트웨어 자회사 ‘엠비션’의 엔지니어인 배창혁씨도 펠로다. 배씨는 짬 날 때마다 베를린에서 기차를 타고 볼프스부르크까지 와서 펠로 활동을 한다. 그는 “지금 업무에 활용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학부만 졸업한 친구들보다 큰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42 볼프스부르크' 사무실 벽면은 마치 수영장처럼 꾸며져 있다. 이는 '42'만의 독특한 입학시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42’는 18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코딩을 무료로 배울 수 있지만, '피신(Piscine, '수영장'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까다로운 입학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수영장에 들어가면 스스로 수영을 할 수 있듯,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동료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코딩을 배운다는 뜻이다. 한국 학생들도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코딩 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보통 학생들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고 25~26세에 기업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또 5~6년간 훈련받아야 한다. 볼프스부르크의 프로그램은 자동차 SW를 1년간 집중해서 배우기 때문에 곧장 취업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업계에선 이런 인재들이 꼭 필요하다”고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 사장은 말한다. 지난 30~40년간 자동차 산업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자동차가 내게 말도 걸어주고, 좋아하는 것도 기억해주길 바란다. 어찌해야 하는가? 창신(創新) 해야 한다. 법고(法古)창신 해야 한다.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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